이모부의 죽음.

울 어머니가 제일 큰딸이고, 그아래 딸이 이모(큰이모라 부른다. 이모 둘 중에서 큰이모니까.)가 있고 그 아래 작은이모가 있다. 돌아가신 분은 큰이모부.
큰이모부께서는 올해 연세 55세이시고, 건설현장에서 코킹(창문틀에 실리콘 쏘는것) 기술자시다. 나중에 수습하면서 들어보니, 거의 개인사업자처럼 팀을 꾸려서 전국의 현장에서 작업을 하신다고 한다.

1. 불길한 전날. 5월 21일. 금요일.밤.

밤늦은시간, 어머니가 내방문을 두드리셨다.
“준식아. 이모부 무슨일 있나보다” 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문을 여시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 지방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고속도로 순찰중에 갓길에 차가 서있어서 가보니 차안에 사람이 죽어있길래 연락처를 뒤져서 전화를 했다고. 그 전화를 큰이모가 받고나서 어머니께 전화를 하신거였다. 이모가 핸드폰으로 이모부께 전화를 걸어보니 형사가 받더란다. 돌아가신 분 핸드폰 자기가 보관하고 있다고.
그래서 막내이모부가 밤11시쯤에 큰이모와 사촌동생을 태우고 해당 경찰서로 가셨다. 우리는 설마설마..아니겠지 아니겠지..하고는 있었지만…이모부의 전화를 형사가 갖고 있다는 것이 … 이미 확실한 상황을 반증하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겠지.
사촌동생(23살. 2월말에 제대하고 지금 대학교3학년)녀석에세 전화해보니, 가는 중이라고 …
늦어도 괜찮으니..도착해서 상황 확인대는대로 엉아한테 전화하라고 일러두고..회사 총무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여차저차해서 아무래도 안좋으니, 내일 출근못할수도 있겠다고 말해놓고.
서너시간쯤 지나서 사촌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 맞다고…
길에서 돌아가신것이기 때문에 부검을 해야한단다. 다음날 아침일찍 서울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이 있다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아침에 국과수에서 만나기로 하고 통화를 끝냈다.
사실이었구나..
어머니께서 정초에 어디서 점보신게 있는지… 나더러 4~5월에 상가집에 가지 말라고 했단다. 그러나 가야하고, 그런거에 나는 거의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인에 대해서, 또 그 주위의 사람에 대해서 어려울때 마음을 쓰는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마음이 안놓이시는지 소금하고 팥을 한웅큼 싸놓으셨다.

2. 5월22일 첫째날.

아침일찍 일어나서 대충 물한잔 마시고 국과수로 향했다. 부검이라 부검… 사촌동생녀석이야 다 컸지만 자기 아버지 부검하는거 봐서 좋을거 없을듯하고, 막내이모부도 늦으실지 어쩌실지 몰라서, 아침에 출발하면서 부검에 가족참관인으로 들어갈 각오를 하고 갔다.
국과수 정문이 있고 왼쪽에 부검하는 곳이 따로 있는가보다. 왼쪽의 주차장을 지나서 들어가다보니 다른 사건에 관련된 불에 타버린 차도 증거차 가져다놓은게 새빨갛게 녹이슬어버린채로 있었다. 건물입구는 큰 사고때 보는것처럼 앰불런스들이 잔뜩 모여있었는데, 서울,경기지역의 부검을 신월동 국과수에서 하고 다른지역은 전국에 3갠가 4갠가 있는 국과수 지부(?)에서 부검을 한다고 했다. 사촌동생녀석이 보인다. 학교에서 바로 출발하느라 배낭을 메고 있는채였는데 … 우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큰이모를 뵈러 갔다. 건물 옆쪽에서 눈이 퉁퉁부은채로 울고 계셨다. 이제서야 이모부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온다. 잠시후 막내이모와 막내이모부가 도착하시고, 부검실 입구에 있는 부검대상자 명단을 확인해보니 큰이모부 성함이 써있었다. 경찰에서 아들에게 인도해준 소지품봉투를 보니 지갑과 통행증…등이 있었는데. 통행증에는 19일 오후5시에 모 톨게이트를 진입하신걸로 나와있다. 우리에게 연락이 온게 21일이니.. 하루반정도가 지나서 날수로는 이틀이 지나서 연락이 온것이었다. 갓길에 차가 서있는 경우 쉬는 차거나 운전자가 자는가보다..하고 말았던 것인데 순찰차가 이틀연속 같은자리에 서있는 차를 보니, 이상하다 싶어서 조사해본것이라 한다. 즉 19일날 저녁에 돌아가셨고 다음다음날 발견된것이다. 현장에 내려가셔서 바쁘실땐 2~3일 연락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번에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충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부검을 마친 시신들은 속속 앰불런스에 다시 태워지고…어디론가로 떠난다.
작은이모부께서 나더러 부검에 들어가볼테냐고 물어보신다. 기꺼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가슴은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하고 있다. 형사가 와서 부검에 들어갈 가족을 물어보고, 제가 들어간다고 대답을 했다. 작은이모는 큰이모를 모시고 차에 가서 좀 앉아서 쉬게 하시고..다들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형사가 부른다. 옆의 사무실에 가서 유품인수인계를 했다는 확인서에 싸인을 하란다. 아까 사촌동생이 갖고 있던 이모부의 지갑과 통행증..을 받았다는 싸인을 마치는 순간. 방송에서 이모부 부검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부검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뇌출혈이셨다고 들었는데 부검시에 두개골을 절개해서 들어내는 순간 핏덩이같은것이 툭 떨어지는걸 보았다.
부검하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육신은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하구나…하는걸 느끼게 되었다. 1시간가량 부검이 이루어졌다.
대충 확인된 사인은, 뇌출혈.
그러니까 운전하시다가 뭔가 몸에 이상이 느껴져서 갓길에 차를 대고, (부검의의 말로는 어지러움, 울렁거림등의 전조증세가 있을수 있다고 한다.) 신발을 벗고 조수석과 운전석쪽에 옆으로 누우셨는데, 그상태에서 뇌 혈관이 터져버린것이었다. 사고현장을 찍은 사진도 보았는데 시트에 비스듬이 얼굴을 묻고 코에서인지 입에서인지 거품이 나와서 말라붙어있는 그런 사진이었다. … 혼자서 얼마나 힘들어하시다가 돌아가셨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이모부의 친척들이 오시기 편한곳이, 그리고 신월동에서 모시기 편한곳이 부천에 있는 모 사찰의 장례식장이었다. 다행이 우리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 이것저것 접수하고, 뭐하고 뭐하고 너무나 복잡해서 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촌동생이 상주인데, 상주의 검정정장과 와이셔츠,넥타이를 대여해준다. 일단 옷을 입히고, 영정사진을 마련해야되는데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밖에 없으니, 이 두개중의 하나로 만들어야한다. 주민등록증은 복제방지를 위해서 숨은반사마크가 들어있고 이것을 스캐닝했을때 심하게 흰 무늬가 나타다 도저히 쓸수가 없었다. 포토샵으로 대충 지울수 있긴 했으나,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그리고 사진의 얼굴모양이 변형되게 되면 좋지않다는 이야기에 주민등록증은 포기하였다. 나머지는 운전면허증인데 운전면허증은 표면에 잔 흠집이 많아서 이또한 쓰기 부적당해 보였다. 그러나 영정을 모신곳에서 2~3미터 떨어져서 보게되므로 그럴때는 스크래치가 잘 보이지 않아, 운전면허증의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게 된다.
대충 장례식장의 준비가 끝난 후, 일단 나는 집으로 와서 옷을 정장으로 갈아입고 세면도구와 일회용칫솔 몇개, 충전기, 그리고 사촌동생놈 입힐 내의와 양말을 사서 다시 장례식장으로 갔다.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워낙 경황이 없다보니 정신없이 하루가 갔고, 갈사람들은 가고, 다음날을 위해서 몇몇은 대충 눈좀 붙이고 사촌동생과 둘이서 밤을 새게 된다. 2시조금 넘어서 사촌동생에게 내일은 조문객이 많이 올테니 눈좀 붙이라고 먼저 한켠에서 재우고 나홀로 영정앞에서 향불 꺼지지 않게 바꿔꼽으면서 밤을 새웠다. 아침6시반에 스님이 오신다고 했으니 6시까지만 버티면 되었다.

3. 5월23일.둘째날.

6시에 다들 깨우고 나서, 나는 반대편 비어있는 영안실에서 눈좀 붙였다. 눈떠보니 12시. 이크. 벌떡 일어나서 나와보니 친가댁 식구들 많이 오셨고.. 오전에 염을 했다고 한다. 큰이모도 소복을 입으셨고.
낮에 사촌동생의 친할머니, 그러니까 돌아가신 이모부의 어머니께서 오셨는데 심장이 안좋아서 입원중이셔서..식구들이 알리기를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아실것… 쓰러지시는 한이 있어도 모셔오겠다고 전날 말했는데… 드디어 오셨다. 입구 엘리베이터부터 할머니의 통곡소리가 들리고.. 식구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셨다. 당신보다 먼저 떠나보낸 장남의 영정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까는…나는 차마 상상을 할 수가 없다. 할머님께서는 내가 너무 오래살아서 이런 꼴을 본다고도 하셨고 이 예쁘고 착한놈을 왜 이리 데려가느냐고도 하시면서 한참을 통곡하셨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다들 눈시울을 붉히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이 발인을 하는 날인데, 일을 좀 해둘것이 있어서 낮에 집에 잠시 와서…일 좀 하고…나도 뻗어버렸다.

4. 5월24일 셋째날 발인하는날.

5시반에 스님이 오신다고 했으므로, 4시쯤에 일어나서 씻고… 5시까지 장례식장으로 갔다. 5시조금 넘어서 스님이 오셔서 독경을 하시고 염불을 외시고… 5시반 경에 발인하기 위한 마지막 제사를 지내러 지하의 식장으로 내려갔다. 절 할 사람들 다 절 하고… 드디어 출발. 벽제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고 유분은 그 절의 납골당에 모시기로 했다. 동생의 학교친구들이 운구를 해서 운구버스까지 고인을 모시고. 6시 조금 안되어 벽제로 떠났다. 도착하니 7시가 좀 안되었던듯 싶다.
7시반에 화장이므로 먼저 잠시 관을 모셔놓는 곳에 모셔두었고 20여분정도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잠시후 아침일찍 화장하는 순서의 명단이 호명되고 … 드디어 화장장 안으로 관이 들어갔다. 화장장문이 닫히는 바로 앞에서 유족들이 지켜볼수 있는데 각자의 종교에 따른 의식(찬송가, 독경..)과 유족들의 오열과 절규의 소리가 가득하다. 화장장문이 닫히고, 화장이 시작되는 표시등에 불이 들어왔다. 울지 않던 사촌동생놈도 그때는 울고, 스님의 독경을 듣던 큰이모는 소리내어 통곡은 하지않았지만 한참을 흐느끼다가 혼절을 한다. 식구들이 손발을 주무르고 등을 두드리고 해도 눈도 뜨지못하고 웅얼거리지밖에 못하셨다. 안되겠어서 이모를 들쳐없고 주차장까지 내려가, 같이 오신 친지분이 운전하시고 우리어머니와 함께 벽제 인근의 병원으로 모셨다.
다시 화장장으로 올라와서 숨좀 돌리고나니, 화장장의 표시등이 깜빡깜빡, 화장이 끝났음을 알린다. 가로막혔던 철문이 열리니, 흰 뼈조각 몇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직원분께서 뼈를 수습하시고, 우리더러 옆쪽으로 오라고 신호를 보내신다. 분골(뼈를 부수는 과정).
유리로 막힌 작업장 앞에서 이모부의 명패를 들어보이며 맞느냐고 한다. 맞다고 확인을 하니, 수습한 뼈조각을 흰 한지위에 붓고 쇳덩어이로 큰 조각을 꾹꾹 눌러 부순다. 대충 부순뒤에 한지를 말아쥐고 옆쪽 분쇄기에 넣고 전원을 키니 우웅…..하는 소리가 나면서 분쇄가 시작된다. 1분쯤 지났을까… 분쇄기에서 뽀얗게 가루가 된 유골을 다시 흰 한지에 싸서 납골항아리에 남는다. 분골하는 작업장과 유족사이에 컨베어벨트가 설치되어…유골가루를 담은 항아리가 전달되었다. 이모가 들던지 해야했는데 병원에 실려가셨으므로 사촌동생은 영정을들고, 나는 그 이모부의 유골가루가 담긴 항아리를 들고 뒤따랐다. 이렇게 한줌 가루가 되어버리신건가… 화장을 마치고 유골을 수습해서 마치고 다시 운구버스에 타는데까지 10분남짓 걸린듯하다.
절 안에 있는 납골당에 모시고, 간단하게 제를 지낸후 마지막 뒷마무리를 한 뒤에 막내이모내외와 사촌동생과 함께 이모가 입원해있는 벽제인근 병원으로 다시 갔다.
링겔을 맞으신 이모는 대충 기력을 회복하셨고, 막내이모내외 차에 모시고, 나와 사촌동생은 돌아가신 이모부차를 몰고 의정부 집으로 향했다. 대충 차에서 메모랑 서류들 좀 챙겨서 정리하고.. 밥 해먹고.. 조금전에 귀가…

5. 느낀점/ 기타..

55세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신데, 처자식을 위한다고 그리 잠도 못주무시고 힘들게 일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대체 이모와 사촌동생은 어찌 살아가야 하나.

이모부의 일이 일이다보니, 작업할 팀을 꾸려서 재료를 사서 작업을 한 뒤에 팀에게 임금 먼저 주고, 나중에 공사현장에서 대금을 받는 형태인데 … 계약서가 대부분 없다.. 나갈돈은 다 나갔거나, 카드로 사셨기때문에 월말에 출금이 될텐데… 돈 준다 했던 사람들은 연락이 없다. 20일에 공사대금 1100만원을 받기로 하셨다는 얘기만 들었다는데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 답답함. 아마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게되면 웬만큼 인간성이 된 사람이 아니면 줄돈 안주고 버티다가 잊혀지길 바랄 것이다. 계약서는 자기도 안 썼다는걸 알기 떄문에…휴.

밤새면서, 또 운전하면서 사촌동생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모부랑 이모 결혼식 하실때에도 어렸지만 나도 가봤고. 또 사촌동생놈 태어날때도 병원에 가봤고. 이모님댁과 우리집이 오랫동안 같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보통의 이종사촌지간보다 더 우애가 깊다. 게다가 우리집도 아들하나고 이모네도 그녀석 달랑 하나니…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낸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되기 마련… 너희 아버지께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그렇게 죽을때까지 일을 하셨던 것은 오로지 너와 네 어머니를 위해서다. 이제 아버지가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하고, 친구들 만나고, 엄니에게 짜증내고, 밤늦게 술마시고 돌아와도 너희 세식구 그 가정이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말없이 이렇게 급하게 아버지가 가셨지만 아버지가 만약 그 길바닥에서 너에게 한마디 하실수 있었다면 뭐라고 하셨겠느냐. 힘내서 열심히 살고, 어머니 잘 보살펴드려라…라고 하셨을 것이다. 니가 우는것, 힘들어하는것, 약한 모습 보이는것…모두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아닐것이다. … 등등의 이야기….
사실 마음이 많이 답답하다…. 이제 스물셋..어리다면 어리고 다 컸다면 큰 나이인데…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겪은 이런 큰 일에 많이 힘들어할것이다. 꿋꿋하게 이겨내고 당당하게 살길 바란다…

건강은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부검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그 과정을 묘사한다는 것이 돌아가신 이모부에게 예의가 아닌듯하고 또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사촌동생녀석에게 충격이 될까바 쓰지 않기로 했다.

떠난 사람은 아무 책임도 질게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 지워질 고통의 무게는,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면 미리 꼼꼼하게 챙겨놔야 할것이다. 하다못해 영정에 쓸 사진한장이라도… ..

이번 이모부의 죽음을 겪으면서…사람의 앞길은 아무도 모른다는 너무나 흔한 그 말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계기였다.

12 Replies to “이모부의 죽음.”

  1. 쉽지 않았을 텐데 담담하게 잘 적으셨네요. 부검에 관한 부분은 잘 하셨습니다.

    고인과 관련한 이생의 문제는 두루 평안하게 마무리 지어졌으면 합니다.

  2. 제 가족에게도 바로 얼마 전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천만다행으로 끝났습니다. 건강하게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정말 행복의 조건입니다. 돈과 명예는 건강 이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요새 통 안 보이신다 했더니 그런 일이;;;;
    고생 많으셨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어제 얘기를 듣고도 이제서야 기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5. 오랫만에 왔드니, 이런 슬픈 일이…
    돌아가신 분은 좋은 곳 가셨을거고, 다만 이모님이 힘드시겠다. 전화 자주 해드려.

  6. 마음이 무겁겠구나.
    쉽지 않은 일에 듬직하니 너의 도리를 다하느라 고생 많았다. 나도 오래전에 친구를 먼저 보낼 때 그런 과정을 지켜 보았기에 너가 쓴 글이 너무나 생생하다. 산 사람은 어떻하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가신 분이 마지막 순간에 편히 눈 감으셨기를 빌어 본다. 가준분들에게도 너와 같은 사촌이 있다는것이 큰 위안이 될 것이니 앞으로도 잘 해드려라..

  7. 오랜만에 들어와봤는데…
    준식아 고생 많았겠구나.
    좋은 형이구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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