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근황

5월에 초급반을 다녔고 20미터를 허부적거리며 겨우 갔던 비루한 발버둥은 50미터 풀을 5번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달 말 메르스가 창궐(?)하였고 중급반 수강을 취소하고 한동안 수영을 쉬었다. 메르스가 진정되고 여름부터 조금씩 다시 수영을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킥판을 잡고 자유형 연습을 할 때에는 양손을 다 앞으로 나란히 하고 킥판을 잡는 순간이 있는데 킥판만 놓으면 양손이 앞쪽에 모이는 일이 없이 물레방아돌듯 계속 돌아야, 돌려야 했다. 아내가 예전에 배웠던 강사가 잠깐 자세를 봐주면서 손을 앞으로 모았다가 가라고 한다. 물을 헤집은 손이 물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앞쪽으로 갈때까지 반대쪽 팔을 앞으로 뻗은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노력하니 가능하게 되었다.

양팔을 앞쪽으로 잠깐씩 유지하는 것으로 수영은 훨씬 쉬워지고 속도도 빠르게 되었다. 아울러 더 오랫동안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어 예전에 500미터 수영하고 나면 기진맥진 했으나 이제는 1.5km (50미터 풀 15번 왕복)까지 헤엄치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10월에 배영을 배우고자 중급반 등록을 시도하였는데 기존 중급반 수강생중 재수강인원 + 지난달 초급반 수강생 중 중급반 승격자들로 이미 제한인원이 찼다고 한다. 아무리 등록 첫날 새벽에 1등으로 줄을 서 있다 하더라도 새로 중급반에 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급반은 일정 인원이 중급반으로 승격하고 일부는 재수강, 일부는 수료하기때문에 등록 첫날 새벽에 줄만 일찍 서면 몇자리라도 나기 마련. 아예 초급반을 통해서 한달뒤에 다시 중급반 우회수강하는 방법을 고려하든지 해봐야겠다.

댓글에 부담갖지 않기로 하였다.

며칠전 블로그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길래 보니까 그 글도 아닌 다른글에 관련된 질문이었다. 글쓴후 2주가 지나면 자동으로 새 댓글을 달 수 없게 설정하였기 때문에 다른 최신글에 댓글로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 주소도 없고 입력한 이메일 주소도 검색해보니 아무런 검색결과가 없다. 즉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답변은 이메일로 달라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블로그 댓글은 어떻게든 답글을 달아주고 가능하면 삭제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댓글 지우고 그 사람에게는 답변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NAS→ iphone→크롬캐스트→TV

NAS에 동영상을 넣고 DLNA를 지원하는 TV에서 보곤 하는데 종종 TV 자체 플레이어가 동영상 코덱을 지원하지 못하거나 자막파일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 스마트TV라는 물건을 구매할 필요가 없단거다.) 물론 해결책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컴퓨터로 NAS에 접근해서 동영상을 HDMI 케이블로 출력할 수도 있고 적당한 DivX플레이어를 구입할 수도 있으며 이때는 동영상을 보기위해 컴을 부팅하고 HDMI케이블은 연결한다거나 DivX 장비구입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다 찾은것이 nPlayer(미국 앱스토어 8.99불) 앱. 이미 무인코딩 동영상 재생 앱인 AVPlayer (2.99불)를 갖고 있긴 하지만 이 녀석은 TV로 쏠 방법이 없던 것. 동영상 플레이어에 중복지출을 한게 속쓰리긴 했으나 DivX플레이어 구입할뻔 했던 것에 비하면 나았다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 NAS에 DLNA나 ftp로 접근 : 일부 자막은 DLNA로는 읽히지 않고 ftp 연결로만 읽혔다. 예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자막 문자열의 인코딩을 바꿨더니 보였던 경우가 있긴 했다. 이 방법으로도, 확장자를 srt로 바꿔도 해결되지 않았던 동영상과 자막 셋트들도 nPlayer 앱으로는 잘 재생되었다.
  • 동영상 재생 : 기존 TV의 자체 재생기능으로 지원하지 않던 동영상도 모두 재생할 수 있었다.
  • 큼지막한 자막 : 자막의 크기가 커지니 화면을 가리는 불편함보다 오히려 작은 글씨를 읽기 위해 글자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어 동영상 보기가 편해졌다.
  • 자막 씽크 조절 : 영상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나오는 자막표시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다.
  • 크롬캐스트로 TV까지 무선 연결 : 가장 마음에 든 기능이다. 폰에서 앱 실행하고 동영상 재생 시작한후 크롬캐스트로 보내기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길냥이 무지개다리 건너다

두달이 흘렀다. 6월말에 길냥이녀석 근황을 올리고 열흘쯤 지나서 녀석이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버렸다. 7월 9일에도 녀석을 쓰다듬고는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 다음날에 훌쩍 그렇게 되어버렸다. 7월 10일 저녁을 주러 가보니 녀석은 늘 그렇듯이 내 차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와서는 캔 사료를 한두입 먹더니 옆 물그릇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가만히 물그릇을 보기만 하다가 다시 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입가에 사료가 묻은걸 떨어내지도 못한 채 엎드려 있길래 녀석을 끄집어 내는데 털이 한웅큼 빠졌다. 가만히 세워놓고 보니 몸엔 힘이 하나도 없고 초점없는 눈으로 휘청이다가 이내 엎드려버린다. 낌새가 이상했으나 볼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가 2시간뒤에 와 보니 녀석의 상태가 더 안좋아졌다. 숨은 쉬고 있으나 불러도, 만져도 반응이 없다.

급하게 빈 종이상자를 하나 가져다가 녀석을 담아 동네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에 가서 체온과 생체반응을 본 의사는 지금은 숨만 붙어있는 상태라 한다. 진료대에 올려놓고보니 이미 녀석의 몸상태를 알았는지 개미들이 잔뜩 꼬여있었다. 의사 왈, 어디가 문제인지는 검사를 해봐야하는데 비용은 50만원이다, 물론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치료가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다. 다른 고양이,강아지들도 입원해있기 때문에 병명을 알 수 없는 길냥이를 입원시킬 수도 없다고 한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너무 상태가 좋지 않다며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아내는 펑펑 목놓아 울었고 나는 의사에게 알겠다고 하고 다시 고양이를 상자에 담아 나왔다. 집근처까지 와서 아내를 달래서 집에 먼저 들여보냈다. 처음 녀석을 만났던 수풀로 가서 녀석을 꺼내 놓았다. 녀석은 아마 어둡고 편안한 곳을 찾아가 그날 밤에 짧은 길냥이의 삶을 마감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길냥이의 삶이란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이긴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하더라도 슬픔이 덜 한것은 아니다. 녀석과 함께 했던 2년은 “밖에서 키우는 우리 고양이”가 있던 시절이었다.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간 녀석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나를 울컥하게 했던 보스 둘의 말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 문장들이 있다. 감정의 한복판에 정통으로 와서 꽂힌 장면, 말. 그런 것들에 대한 기록.

걱정말고 일하세요. 정치는 내가 할게요.

예전 회사 서비스가 함께 일하던 12명과 서비스 전부가 대기업으로 인수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서비스에 대한 회사의 기대가 가시화되면서 소문과 압박으로 체감되었다. (아마) 우리 모두는 그런 부담감을 감당할 훈련도, 전후사정을 물어볼만한 인맥도 없던 상태로 찝찝하고 불안한 상태였다. 12명 중 함께 온 보스 e가 어느 날 이야기했다. 걱정말고 일하라고. 정치는 자신이 한다고. ( 정치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설득과 협의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는 사업부장이었지만 어느 팀원보다 geek하고 techy했으며 오덕스러운 사람이었다. 새벽 서비스 점검으로 개발자, 기획자들이 밤샘근무를 하게되면 현업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며, 먹을 것 한보따리를 싸와서 함께 밤을 같이 지새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이다.
아마 사내정치를 해본 일도 없었을 것이며, 있다 한들 조직의 규모가, 말하자면 끕이 다른 곳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천여명이 일하는 회사에서 자신 역시 그 조직의 일원이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11명의 팀원들과 팬덤이라 할만큼 열성적인 사용자층을 갖고 있는 서비스의 총책임자로서, 어찌 그의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세월이 지나고나서야 그때 서비스가 산으로 가지 않고, 그 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이 휘둘리지 않도록 바람막이가 되어준 것이 참 대단한 일이었구나… 싶다.

야. 그거 당장 그만해.

일이란게 고객이나 현업의 요구사항과 판단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결정권자들이 설정한 목표와 과제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몇해전 일이 하나 뚝! 저~ 위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다. 어느날 출근했더니 저 윗분의 의중에 따라 이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고 그 분야를 해왔던 우리 회사에서 맡기로 했고 그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 몇몇 뽑히게 되었다. 본부장급 한명, 팀장 하나, 과장 둘이 처음에 들어갔고 (그 와중에 난 또 차장이 되고..) 나중에는 더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었다. 출퇴근도 부천에서 분당까지 다녀야했고 그 시절에 외곽순환고속도로 중동IC부근 화재로 서너달 교통지옥에 시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윗쪽 회사의 CEO가 바뀌었고 그 일을 지시했던 사람은 사라지면서 일의 명분이나 절박함은 사라졌는데도 계속 일은 해야하는 나날이었다. 적극적인 협업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걸 중단하자니 무슨 논리로 누가 나서서 누구를 설득해야한단 말인가.
이게 일을 하는건지, 급류에 휩쓸려가는 뗏목에서 하루하루 잠들고 깨어나는 환상속에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회사에 신입 CSO(최고 서비스 관리자),C님이 오게 된다. 계속 분당에 왔다갔다하는게 무슨 일이냐며 보고를 하라하여 우리 팀장과 함께 보고를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 장시간의 회의도 아니었다. 경과 상황을 듣던 그 임원은, 아 ㅆㅂ.. 야 그거 때려쳐. 라며 팀장에게 “우리쪽 창구는 누구야?”부터 시작해서 당장 계약파기와 프로젝트 드롭, 파견 철수를 결정했다.
그 책임과 뒷수습은 해당 임원의 몫이었겠지만 몸과 마음은 고달프고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여러명의 난감한 회사생활이 한순간에 해결된 것이다. 친한 다른 팀장에게 그 임원과 일하기 어떠냐고 언젠가 물었더니 “그분은 아버지같은 분이죠”라고 대답했다. 동의한다.

가능성이 0만 아니라면, 다음에 너를 팀장으로 고려하고 있다거나 상장할 때 스톡옵션 두둑히 챙겨준다는 약속을 하는 것도 보스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이 이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하는 고통,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로서는 해결하거나 전망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외면한다면 그 미래까지 이 구성원이 이 회사에 몸담고 있기나 할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허언인지 굳은 결심인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 수 없는 모호함이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마 선언하고 실행하는 것은 , 직책자 역시 자신 역시 조직의 역학관계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부딪혀야하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렇게 회사생활하고 저렇게 조직구성원을 배려하라고 말하기보다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이다. 페북에 근사한 링크 10번 퍼나르고 부하직원들한테 받은 좋아요 100개로는 얻을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