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청각장애인과 처음으로 수화 대화

By | 2018-04-29

휴일 오후 아내는 수영장에 갔고 두어시간 시간이 붕 뜬 나는 맥북을 챙겨들고 스타벅스를 찾았다. 미리 저렴하게 사둔 아메리카노 쿠폰에 추가금을 더해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를 샀다. 휴일 오후라 빈 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다행이 벽쪽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새로 찾은 GTD 웹앱과 아이폰용 앱을 테스트하고 있던 중 옆자리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는 남녀 학생이었는데 잠깐 잠깐씩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곁눈으로 보였다.
최근 몇년간 수화를 틈틈이 배워왔고 요즘도 화,목요일 저녁은 수화강습을 들으러 다니는 중이라, 어느 정도 신경이 그쪽 방면으로 쏠리긴 했다. 빤히는 물론이려니와 힐끔이라도 쳐다보는건 실례일듯 하여 부러 모니터에 더 집중했다. 그간 수화 강사님에게 몇번이고 물었던 것 같은데, 길가다가 수화하는 분을 만나면 수화 배우고 있는 학생이라며 말을 걸어봐도 되느냐, 라고 했더니 대화 중간에 불쑥 끼는게 아니라면 아마 대부분 괜찮을 것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대충 커피도 다 마셨고 하려던 일도 마무리가 되어 자리를 슬슬 정리하다가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이때다. 지금이야! 말을 걸어!!! 마음 속에서 스위치가 켜졌다. 안녕하세요? 청각장애인이세요? 저는 청인인데 요즘 수화를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옆에서 수화하시는 모습이 눈에 띄길래 반가워서요. 남학생과 여학생은 나에게 청인이냐고 다시 물었고 그들도 반갑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대학교 이름을 부르는 별칭이 추측되는게 있긴 했으나 혹시나 해서 지화로 물어보았는데 역시 그 별칭이 맞았다. 인근에 있는 대학교 학생들이길래 요즘 시험이냐 물었더니 시험기간 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맞다 시험이 아니고 시험 기간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미숙에서 벌어지는 실수지만 대부분의 청각장애인 분들은 잘 알아들으신다.
수화를 배우고 있는 간략한 사연과 잠깐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 대화를 나눌 실력도 안되기도 하고 공부하는 학생한테 아저씨가 길게 말 거는것도 미안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웠어요, 열심히 공부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수화를 배운 후 모르는 청각장애인에게 처음 말을 걸어본 날이다. 흔하지 않은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우연히 만나 인사하면 이런 느낌일까? 수영 다녀온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수화를 아주 잘하는 자기는 그런 경우에 말을 걸수 없단다. 배우는 중이라 어눌하고 중간중간 틀리는 사람이기에 말을 걸 동기도 있고 상대방도 기특하게(?) 여기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란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당신 오늘 엄청 뿌듯했겠다고 아내는 여러번 이야기하며 엄지를 치켜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