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를 사랑하는 고양이

고양이란 녀석들은 대부분 진공청소기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라서 어디론가로 숨어버리곤 하는데 우리 고양이는 특이하게도 진공청소기를 꽤나 사랑하는 편이다. 창고에서 청소기를 꺼내는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청소를 시작하는 안방에서 드러누운 후 청소기를 기다린다. 전기코드를 꼽고 침대청소용 솔로 갈아 끼운후 전원을 넣으면 청소솔이 회전하면서 바람을 빨아들이는데 이 녀석은 이걸로 자신의 털을 빗겨주는 것을 즐긴다. “고양이를 처음 데려오게 되면 편안한 잠자리와 화장실, 물과 사료를 준비해주세요. 준비가 완료되면 잠시 후 부터 털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양이는 사시사철 털이 많이 날린다. 특히 봄가을엔 뿜어낸다고 할 정도로 털을 날리기에 청소기며 공기청정기로 자주 돌려야 하고 수시로 털을 빗겨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청소기를 대고 바로 죽은 털을 빨아들일 수 있게 해주니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녀석의 특이한 취향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다른 고양이들과 다르게 진공청소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년간의 고양이 집사로서 곰곰히 생각해본 과정은 이러하다.

일단 진공청소기로 털을 고르면서 자연적으로 행해지는 빗질의 시원함과 죽은털 솎아내기의 장점은 고양이도 알 것이다. 다만 그 시끄러운 모터소리의 공포와 괴로움이 먼저 엄습하니 제딴에도 어쩔 수 없이 도망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청소기를 돌리면서 고양이를 위험하게 하지는 않을 것임에도 어쩐 일인지 녀석들은 청소기를 피하기 바쁘다.

예전 기억을 되살려보면 초기 아깽이 시절에는 이 녀석도 청소기를 어느 정도 무서워 했던 것 같다. 이 방 청소하면 저방으로 도망가고 저방 청소하면 주방으로 도망가고… 그러다가 매일 청소기를 맞닥뜨리면서 어느 날 어느 순간엔지는 한번 버텨보기로 했나보다. 청소기가 1.5미터 정도 거리까지 다가왔지만 녀석은 웅크리고 경계하긴 했지만 도망가진 않았다. 이때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녀석이 견뎌보기로 한 반경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바깥쪽만 청소하고는 다른 장소를 청소하기로 했다. 꽤 오랫동안 녀석이 설정한 ‘도망의 마지노선 반경’을 넘지 않는 신뢰를 보여주었고 녀석은 청소시간이 시작되어도 원래 엎드려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닳았나보다.

이렇게 청소기의 소리와 움직임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은 된 것인데, 그렇다면 청소기에 몸을 맡기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다른 고양이와 주인과의 관계도 그러하겠지만 내 경우는 특히 이 녀석과 친밀감이 상당히 높다. 긁어주기, 털 골라주기,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어주기, 응가 치워주기, 세면대에서 물 먹이기 (이건 나중에 글로 한번 써야할 정도로 기특한 일이다.), 사료주기, 간식 주기, 안아서 천천히 비행시키며 집안 구경시켜주기, 귀 청소해주기, 눈꼽 떼어주기 등이 일상적으로 녀석과 이루어지는 스킨쉽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면 녀석은 집사람보다는 내게 다가와서 품으로 파고든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5분이고 10분이고 녀석의 머리와 콧잔등, 턱밑, 등짝과 배를 쓰다듬어준다.

싸인 잘해주는 연예인이 좋은 평을 듣는 이유중 하나가 싸인하는 시간만큼은 스타가 자신의 시간 100%을 그 팬에게 쏟기 때문이라 한다. 야옹이와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방금 글을 쓰면서도 녀석이 야옹야옹 거리길래 의자에서 내려가 방바닥에 앉아서 녀석을 한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이 충분히 긁음에 대한 만족인지, 관심요구에 대한 만족인지를 충족시켰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녀석을 만져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녀석은 아마 내가 하는 행동 중에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지 않을까 싶다. 귀 청소를 해주고, 발톱을 깎아주고, 이를 닦아주고, 심지어 목욕을 시킬때에도 녀석은 화를 내거나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면 발버둥을 치며 싫다는 기색을 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가능한 그 상황을 참아주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신뢰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녀석의 ‘미끄러져 떨어질 지언정 발톱으로 집사녀석을 상처입힐 순 없다‘는 태도이다. 그 이후로도 녀석이 내 무릎위에서 발톱을 세운 적이 없다.

이런 끈끈한 애정관계 속에서 언젠가 나는 청소기로 녀석을 툭 쳐보거나 슥 긁어본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이것 역시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을 것이다. 잠깐 견디어보니 어라? 시원하네? 하고 느꼈을 것이고 이후로는 청소기 솔질을 즐기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청소기로 고양이 털고른다는 이야기를 하면 혹시 고양이 청력이 나쁜게 아니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녀석의 청력은 매우 뛰어나고 민감하다. 어느 정도냐면 화장실에 앉아 눈을 껌뻑 껌뻑하면 눈꺼풀 점막 소리를 듣고 잠자다말고 귀가 먼저 움직이고 이윽고 잠을 깬 다음 나를 쳐다본다.

이미 청소기 소리를 무서워하게 된 고양이를 어떻게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주인(집사)와 고양이 사이의 끈끈한 애정와 신뢰 관계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고양이 자체의 성격이 더 근본적인 변수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다 좋은데 털이 너무 빠진단 말이야, 라는 이유로 고양이 키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모두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조급해 하지말고, 녀석의 선택을 존중하며, 언젠가 있을 지 모르는 ‘한번 도망쳐보지 말아볼까?’ 하는 시도를 하는 날 성공의 경험을 안겨줘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청소기를 사랑하는 고양이’ 주인이 되는 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