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 서브스크립션 구매했다가 반품한 이유

By | 2019-02-19

지금 쓰고 있는 쉬크 하이드로 면도기 날이 떨어져 간다. 면도기란 면도기 자루 하나를 갖고 면도날을 수십개 교체해서 쓰게 되는데 오래 쓰다보면 면도기에도 찌든 면도거품과 수염 잔여물로 꽤 지저분해진다. 새 면도기를 구입하려고 찾다가 예전부터 눈여거 보던 면도기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에서 구입해보기로 하였다. 면도기 하나와 면도기 두개가 포함된 스타터 셋트가 배송비 포함 8900원. 도착한 패키지는 여러모로 마케팅적으로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였고 깔끔하였다.
포장을 뜯고 설명서와 같이 구매한 면도거품을 들어내니 제품 상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제품 상자 한쪽 끝을 막고 있는 투명 테이프 (실링 테이프)가 뜯어져 있었다. 둥근 테이프의 80% 정도는 점착력이 있고 나머지 20% 정도는 회사 이니셜이 인쇄되어 있어서 그 부분을 손잡이처럼 잡고 뜯어내게 하려고 했었나보다. 그러나 점착되는 부분이 약했는지 스티커를 붙이는 과정에서 봉해야 할 부분에 정확히 중심을 맞추지 못해 한쪽으로 쏠렸는지 결국 고객은 너풀거리는 실링 테이프를 본 것이다.



이미 개봉된(?)채로 온 면도기 상자를 열어보았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애초부터 실링 테이프가 없이 그대로 상자 안에서 서랍식으로 내부 포장재를 꺼내게 되었다면 또 모르겠다. 아무튼 실링 테이프는 떨어져 있고 상자 안의 면도기는 보호캡이 씌워진 채로 들어있었다. 그냥 쓸까, 반품할까를 고민하다가 반품하기로 하였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면도기라는 것은 사람의 피부에 밀착되서 칼날이 수염을 자르는 물품이다. 피부와 닿고 땀에, 각질에, 종종 상처를 입는다면 혈액도 묻을 수 있는 물건이다. 비록 제품 태그가 붙어있다 하더라도 속옷은 일단 계산하고 매장에서 들고 나가면 변심에 따른 교환,환불이 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게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매장에서 구입하는 속옷은 타인의 피부에 닿았던 속옷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면도기의 실링 테이프 훼손 건에서 일단 기분이 한번 상하고 상자를 개봉해보니 덩그러니 놓인 면도기에서 다시 한번 찝찝함이 생겼다. 면도기가 설령 누군가가 면도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여도 적어도 보호캡을 벗겨서 면도날이나 윤활밴드를 손으로 만져보고 반품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물리적 장치가 없었다.
진열대에 플라스틱으로 단단하게 압착된 블리스터 포장은 뜯기 불편하고 어려움으로 악명높지만 적어도 포장을 뜯은 제품을 다시 제조공정으로 돌려보내 재포장 하는 일은, 이런 종이포장 보다는 수백배 물리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서브스크립션 회사에 반품 의사를 메일과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 반품 제품을 재 포장해서 나가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 했다. 그렇게 믿고 싶지만 고객입장에서는 알 수 있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또 한가지, 서브스크립션 제품은 서브스크립션이 말하듯 정기배송을 위주로 사업을 진행한다. 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으나 아마 매월 마지막주 무슨 요일이든, 2달마다 며칠째든 배송일을 정하면 자동배송이 오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그 시점에서 내가 배송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누가 대신 받아줘야하는지, 어디에 맡겨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회의나 외근이 잡혀서 택배 배송사원의 전화를 기다렸다가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현재 시점에는 알 수가 없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다음날 배송되는 택배 특성상 내가 원하는 날짜에, 내가 배송받기 편한 날짜에 주문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배송이 편리한 사람도 있지만 그냥 배송받기 좋은 날 하루 전날 주문하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차타고 수십킬로를 가야 가게가 있는 땅덩어리에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는 배송에 익숙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