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By | 2003-12-12

하루에도 참 많은 글을 쓴다. 동호회에, 내 블로그에, 다른이의 코멘트란에, 회사서류에…
타이핑은 빠르지만 글을 쓰는 속도는 전적으로 타자치는 속도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글 쓸 내용을 정리해두고 타이핑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타이핑을 하기 때문에 한글자 한글자를 칠때마다 계속 생각을 생산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의 생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바로 “어휘의 선택”이다. 밥이라고 할지 점심이라고 할지 식사라고 할지 끼니라고 할지 아니면 배를 채웠다라고 할지 매 순간 가능한 많은 단어를 떠올린 뒤에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내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어느걸 내도 되는 화투판에서 가장 좋은 패를 골라내서 깔린 패 위에 딱! 소리가 나게 힘껏 내려치는 기분같은 쾌감을 준다.
그리고 여러번 문장을 읽어보고 읽는 사람이 잘못 이해할 여지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본다. 내가 쓴 글은 아무리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반론의 여지는 없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아예 쓰지 않거나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쓰곤 잠궈둘 일이다.) 남이 읽은뒤에 이해를 하는 정도는 그 사람의 이해하는 능력에 달렸지만 애초부터 나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똑바로 쓰지 못했다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별 수 없지않겠는가.

내가 소심한 탓인지, 미도리님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거칠지만 생생하게 써내려가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난 그렇게 썼다가는 한시간뒤부터 밀려오는 후회에 안절부절못할테니까.

나같은 글쓰기 결벽증환자는 뭔가를 제대로 만족스럽게 쓴다는게 쉽지 않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는. 그런 의미에서 디카(사진만 뎅그러니 올려놓는)열풍은 한편으로는 글쓰기에 대한 회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찍고, 올리고, 튀어라. 그러면 대략 알아서 감상할 것이니.

이 글은 미도리님의 “글”에 트랙백 보내졌습니다.

9 thoughts on “글쓰기.

  1. 미도리

    안녕하세요..글 잘읽었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저같은 경우는 평소에 생각나는것을 주로 메모를 해두는 편이죠..
    짬짬이 메모를 남겨놓고 생각하고 정리해두고 하는편인데..요즘은 메모라는게 많이 사라진거 같아요..
    단어 한자한자 생각해서 적당한 단어를 취한다는건 맞습니다.
    제가 하고자 한말은 쓸데없이 낭비하는 갖은 수식어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요즘 어느곳을 가다보면 쉽게 말할부분도 늘어서 쓴글들을 가끔 대합니다.
    예로 쉽게 를 쉬웁게 라든지..쓸데없이 꾸미고붙인글은 자연스럽지못해서 단번에 싫증이 나더라구요..
    정성이 담긴글과 꾸민글은 엄연히 구분이 가능한거니까요..

  2. nosz

    역시 공들인 글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이래서 hof님의 글을 좋아한다니까요.

  3. hof

    미도리//하하. 그런 수식어는 가끔 연애편지 쓸땐 필요하잖아요;;; 어려운글을 쉽게 풀어쓰는것이야말로 진짜 능력이죠. 마치 상대성이론을 초등학생들에게 설명할때 잘 알아듣게 (뭐 전부는 아니어도 개념은..) 설명을 할수 있는 사람과 “으윽..그걸 어떻게..”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자가 더 개념파악을 잘 하고 있고 잘 소화해냈다고 볼 수 있는것과 같겠죠.
    그냥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며칠전에 홈 닫으셨을떄 뭐 잘 아는 사이도 아니긴 하지만 걱정은 되었거든요. 살아(!) 계셔서 좋습니다.

  4. hof

    nosz// 전 nosz님의 그 어느정도 우울하고 사색에 잠긴 소설같은, 시 같은 글을 보면서 늘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 어찌 저라고 한들 없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끄집어내서 글로 적음으로써 나 스스로에게 공론화를 시키는 것을 제가 견뎌낼만큼 강건하지 못할것같은 두려움때문입니다. nosz님이 올리는 글은 하나도 빠짐없이 늘 두번 세번 읽는답니다. 므흣~

  5. 미도리

    저도 반가운걸요..그리고 뭔가 시야가 넓어진느낌도 들구요..
    좋아요..^^

  6. 한은숙

    선배는 이공계보다 인문학도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7. hof

    은숙// 음…사실 고등학교때 적성검사에는 문과랑 이과 사이에 애매하게 나왔던거같아. 모르겠다. 전공이랑…적성이랑 어캐 이렇게 되었는지…. 그냥 좀 씁쓸하기도 하고.. 뭐 꼭 씁쓸하다기보다는… 지난 과거;;가 좀 후회도 되고 말이야. 하핫..;;; 짜식..

  8. Pingback: LieBe's Talk

  9. LieBe

    저야 원체 진지한 사고란 것을 할 줄 모르기에 호프님께 한마디 여쭙게 되는군요..
    나름대로 진지한 주제인듯 하고 정답이나 시비가 나올수는 없는 글이지만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호프님 포스트에서 가장 비슷한 포스트에 트랙백 겁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