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끝나고 PM으로서 하는 일

By | 2011-08-08

모든 프로젝트들과 마찬가지로 웹(인터넷)서비스를 새로 만드는 일도 고단하고 힘든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개발자,디자이너,UI개발자는 물론 전략,법무,보안,시스템엔지니어링,DB,무선,고객센터,QA 까지는 기본적으로 협업을 해야하는 부서들이다.
프로젝트가 끝나고나면 문서정리와 통계,운영정책을 정하고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이때 사내게시판에 신규 서비스에 대한 안내 공지를 하게 되어 있다. 이러이러한 기능을 가진 서비스가 나왔다며 스크린샷과 함께 서비스 기능 요약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영화 끝나고 나서 올라가는 크레딧 같은 셈.
개발은 어느 부서 아무개 차장, 아무개 과장 등등… 디자인은 아무개 과장, 아무개 대리 등등등… 감사합니다 하는 글을 올리게 된다. 대부분의 PM들은 이 공지를 뭐랄까, 정해진 양식에 따라 사무적(?)으로 쓰곤 하는데 내 경우에는 이 사내공지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편이다. 심지어 프로젝트 종료 두달전부터 슬슬 공지 내용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서비스오픈 공지에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포함시키기 위해서다.
저번 프로젝트 종료후 공지 내용 일부를 보자. ㅎ 많은 참여자들중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에 대한 감사 인사부터 시작했다.

○○○개발팀 정○○팀장님, 한○○ 차장님,이○○ 과장님, 엄○○ 대리님, 성○○ 대리님.
처음에 저희의 머리속에는 기술적으로 가능한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것들이 이렇게 동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팀장님, 한차장님을 비롯한 ○○○개발팀에서는 이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물질적, 기술적 기반을 구상하고 그 위에 거대하면서 탄탄한 구조를 세워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인기 키워드를 뽑아내주세요”라는 주문은 짧은 하나의 문장이지만 이것을 구현해내어 화면에 출력시켜주시는 것은 고단한 노력의 시간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십개, 수백개의 기능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조이고 기름쳐서 이 서비스를 세상에 보일 수 있도록 애써주신데 대해 가장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객이란 원래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라고 했던 어떤 프랜차이즈 체인 사장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개발팀에게 기획자는 늘 투정을 하고 요구를 했던 것 같습니다. 힘드셨겠지만 요구사항을 구현하기 위해 묵묵히 애써주신 개발팀 모두에게 감사의 박수를 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특별히 한차장님께는 제가 미처 짚어내지 못했던 부분들도 지식과 경험이 바탕이 된 통찰력으로 챙겨주신 점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UI팀 우○○팀장님, 조○○ 과장님, 이○○ 과장님.
앞 마당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나무 사이로 길이 하나 있으면 더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충 이렇게 저렇게 몇층짜리 집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머리속에 있는걸 잘 설명했는지도 모르겠고 생각했던걸 다 꺼내놨는지도 모를 정도로 개념이 서지 않았던 초창기였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UI팀에서는 정확히 측량한 대지와 꿈속에서나 그렸던 건물, 숙련된 정원사가 꾸민 정원, 알록달록한 문짝, 그것도 하나가 아닌 세 셋트를 그려서 가장 예쁜걸 고르라고 내밀어주셨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디자인을 해주실 때 저는 이만하면 됐다 싶었지만 결코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죠. 더 나아갔고 더 아름답고, 게다가 더 편리한 화면들을 계속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수많은 꿈이 꿈으로, 공상으로 끝나버린 것은 그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자들이 생각하는 세계가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치면서’아 이것이 현실화 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때론 기획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명확하게 기능을 이해한 다음 명쾌한 디자인을 가져오셔서 깜짝깜짝 놀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픈하고보니 몇몇 부분에서는 디자이너의 감성으로는 아쉬운 화면이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우리가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아지면 그때는 이번에 느끼셨던 몇몇 아쉬움들은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ㅎㅎ 다시 읽어보니 오글오글한 표현이다.
나와 함께 기획을 맡았던 파트너 과장에 대한 감사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저와 함께 기획을 맡았던 김○○과장.
지난 몇개월간의 프로젝트로 정말 고생많았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가 있었고 또 몇몇 부분에서는 의견충돌도 있었죠. 큰 이견없이 서비스 오픈까지 오게되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팀 에서 같이 일해보면서 아셨겠지만 제가 한 꼼꼼하다고 자부하는데요, 핸과장(*)의 꼼꼼함과 그것을 꾸준히 지속해내는 지구력엔 당할 수가 없더군요. 만약 핸과장이 돕지 않았다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해왔을지 생각하기조차 두렵습니다. 제가 한번 움질일때 세번 네번 뛰어다니고, 제가 두번 세번 팔로우업 할때 벌써 열번 스무번 앞장서서 챙겨주었지요. 어느 영화제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에게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건 나에게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황정민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저 문장은 제가 핸과장에게 처음으로 했을겁니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제가 “수고했다,잘했다” 라고 듣는 격려와 공(功)이 있다면 그 절반은 기쁘게 핸과장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 김○○과장의 닉네임이 “핸”임.

이 외에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분들에 대해서 일일이 이런 형태로 감사의 인사를 적어서 사내게시판에 공지했으니 본문에 언급된 사람들은 꽤나 기분이 좋았을것 같다. 사실 이런식으로 공지를 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도 했고.
누군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일이 힘든게 아니고 사람이 힘든거라고. 맞는 말이다.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에 “사람”이 직,간접적인 이유인 경우도 꽤 많음은 익히 알고 있던 터.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내,외부 환경과 상급자의 의사결정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담당자,실무자들의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자세가 필수적이다. 프로젝트 초기에 산정했던 일정보다 잔잔하게 시간을 들여야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물론 큰 변화는 따로 일정산정을 요청해야하겠지만…) 내가 쓰는 서비스오픈 공지는 이런 부탁을 할 때 언제든 흔쾌히 시간을 쪼개어 또 자신의 근무외시간까지 더해가면서 부지런히 노력해준 사람들에게 하는 내 방식의 예우고 감사의 표시다. 그들의 역량과 노력, 태도에 대한 멋진 칭송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프로젝트 관리를 했던 사람이 해당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참여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다는 어느 드링크제 광고처럼, 진짜 사기진작은 두둑한 월급봉투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이런 감사 공지도 길고 피곤한 프로젝트 끝에 살짝은 피로회복에 도움은 되지 않을까 싶다. ㅎㅎ
마지막으로 얼마전에 끝난 프로젝트의 공지를 덧붙인다. ㅎㅎ 이번 공지의 컨셉은 “비유” ㅋㅋ

초원의 룰을 관장하는 근엄하면서 다정한 아빠사자 김○○과장님과, 스피드와 민첩성으로 목표지점을 결코 놓치지 않는 집요한 표범 어○○ 대리님이 개발을 맡아주셨습니다.
대면은 자주 못해도 신뢰를 갖고 믿음직스럽게 최고의 디자인을 뽑아내주신 김○○ 과장님은 나무토막에서 피노키오를 만들어낸 손재주 좋은 제패토 할아버지시죠. ○○과장님 부재중이실 때 우○○대리님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2002 월드컵 홍명보의 승부차기처럼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UI개발을 맡아주신 김○○ 과장님과 박○○ 과장님은 언제나 빼어난 실력으로 뚝딱뚝딱 결과를 만들어주시는 우리의 밥 아저씨~
QA과정에서 어려운 과정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이○○ 과장님은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마이더스의 손이고 비록 한번 찡그리지도 않으시지만 추진력만큼은 쉘위댄스의 제니퍼로페즈가 따라올 수 없는 포스셨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현명하게 해결하시느라 막판에 고생하신 김○○ 차장님은 오션스일레븐의 조지클루니처럼 현명하고도 설득력이 있으셨습니다. 꼼꼼하게 QA해주신 이○○ 조장님과 구○○ 조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나로호 발사를 꼭 성공하고 싶다면 이 분들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비스내 SNB,통계코드 및 가이드를 편안하게 챙겨주신 조○○ 차장님, 그리고 손○○ 차장님은 조차장님 휴가에 급하게 넘겨받으셨지만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덤블도어 교장샘의 마법을 보듯 능숙하게, 그리고 충분히 지원해주셨습니다.
프로젝트 진행과 마무리,오픈준비를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이○○ 차장님은 생수계의 에비앙이요, 보석계의 티파니십니다

저번 공지보다 개별 문장은 짧지만 적절한 비유를 찾기에 은근 시간이 들었던 공지.
으음… 다음 프로젝트 감사인사는 어떻게 쓸까… 즐거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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