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뜻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거나 버려야 할 표현은 매우 많습니다. ‘~에’ 다음에는 ‘**에 있다’와 같이 써야 합니다. ‘~에의’라는 말은 불명확하므로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하죠. ‘무게가 꽤 굉장한데’ ‘니네 아빠 굉장하다’ ‘니 형 키 정말 굉장하다’라는 표현보다는 ‘무게가 꽤 나가는데’ ‘니네 아빠 대단하다’ ‘니 형 키 정말 크다’와 같이 쓰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인 것처럼요.
초대라는 말 자체는 ‘어디로 초대’한다는 뜻이므로 그 앞에 나올 말은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시로 초대’가 ‘좋은 시에의 초대’보다는 더 좋은 표현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찬회에의 초대/어린이들은 내일에의 희망이다.’는 ‘만찬회로 초대/어린이들은 내일의 희망이다’로 써야 적절합니다.
안녕하세요. ‘~에의 초대’라는 표현은 어감이 어색한 것이지 의미가 불명확한 것 같진 않습니다. 김중태님은 ‘~에’ 다음에는 ‘**에 있다’와 같이 써야 한다고 하셨지만, ‘집에 가다’와 같이 목적지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시에의 초대’는 의미상으로도 명확합니다.
다만, ‘에’와 ‘의’가 중복되는데, 이것이 반자음(혹은 반모음)의 중복으로 발음상의 불편함 때문에, 표현이 어색해지고 있습니다. 좋은 표현은 정확한 의미전달과 동시에 어색함도 제거야 하고, 읽다보면 음절과 문장이 자연적으로 구분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김중태님은 ‘좋은 시로 초대’가 좋은 표현이라고도 했는데, ‘좋은 시에(로)의 초대’와 ‘좋은 시로 초대’는 어감 차이가 많이 생깁니다. ‘의’라는 명사수식조사가 없어지면, 문장이 끝났다는 느낌이 약해집니다. 흔히 ‘명사’로 문장을 축약할 때, 앞에서 나오는 표현이 마지막 문장을 수식하는 형태를 가지죠. ‘~에’가 어색해서 ‘~로’를 사용했는데, ‘좋은 시로의 초대’라고 해주는 게 자연스런 표현이 아닐까요.
덧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만 ^^; 표현이 어색할 때는 문장의 구조자체를 변경함으로써 자연스런 표현을 살려야 할 때가 있는데요, 저는 ‘좋은 詩로의 초대’나 ‘좋은 시의 세계로(의) 초대’로 표현해 주었으면 좀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시’를 한자로 표기해줌으로써 ‘기호화’하고 ‘대명사’의 느낌을 부여하거나, 혹은 ‘시’라는 단어에 ‘장소’나 ‘목적지’의 의미가 부족하므로, 장소의 의미를 갖는 조사와 어울리는 단어를 추가해줌으로써(‘시의 세계’) 표현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해 주는게 좋겠네요.
duppio님: 소유격 ‘~의’는 우리말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나쁜 표현 중 하나입니다. 일본말로는 ‘나의 집의 마당의 나무의 위의 새의 집’이라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내 집 마당 나무 위 새집’으로 줄어들죠. ‘나의 책, 나의 신조’라는 표현은 일제시대의 잔재입니다. ‘내 책, 내 신조’가 적합한 표현이죠.
‘파티에 초대한다’나 ‘파티로 초대한다’는 말은 문제가 없지만 ‘파티에의 초대’는 의미상 불명확합니다. 이 경우 처격조사 ‘에’와 소유격 조사 ‘의’를 쓰게 됨으로써 파티가 부사어인지 관형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즉 파티의 격이 처격인지 소유격인지 알 수 없게 되므로 의미가 불명확해집니다. 때문에 ‘~의’는 가능한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김중태님: 우선 예로 드신 ‘나의 집의 마당의 나무의 위의 새의 집’라는 일본어 표현이 한국어로는 어색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이런 예를 누가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의’의 표현이 ‘소유격’만 있는 건 아니죠. ‘역사의 흐름’과 같은 표현은 원래 ‘역사는 흐른다’라는 주어+술어의 형태를 ‘명사+명사’로 줄이면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형태죠. 혹은 ‘여론을 수렴하다’와 같은 목적어+술어 형태도 ‘여론의 수렴’이라고 사용되죠. 정규 국어 교육과정에서 배운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역사흐름’이나 ‘여론수렴’처럼 ‘의’를 빼도 되겠네요. 이 중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러운지는 문장속에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티에 초대한다’와 ‘파티에의 초대’를 보죠. 우선, 이상한 표현을 하나 만들어보죠. ‘파티에의 초대한다’. 이 문장 이상합니다. 이 경우 말씀하신대로 파티가 부사인지 관형사인지 알 수가 없는 비문이 되네요. 하지만, ‘초대’가 ‘초대한다’라는 서술어가 아닌, ‘초대’라는 명사로 존재할 때, ‘파티에의 초대’는 비문이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문법에서 ‘부사’는 명사와 대명사를 수식하지 못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명사를 수식하는 건 형용사(관형사)이죠. 그래서, 오히려 ‘파티에 초대’가 비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티에’라는 부사가 ‘초대한다’라는 동사를 수식해야 하는데, ‘초대’라는 명사로 끝나 버렸으니, ‘파티에의 초대’가 더 자연스러워지는 거죠. ‘파티로 초대’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초대’가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명사가 아닌, 행위을 표현하는 명사이므로 ‘파티에 초대’나 ‘파티로 초대’가 의미상 무리가 없는 듯 보입니다. ‘초대’가 ‘동사’처럼 여겨지는 거죠. 김중태님의 지적처럼, ‘의’의 과도한 사용은 의미파악이 힘든 문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부사가 명사를 수식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를 해주세요^^
결국, ‘파티로의 초대’는 의미가 불명확하지 않구요, Mr.Met님의 덧글처럼 ‘더 좋을 거 같은’ 표현이 된다고 생각되네요.
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뜻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거나 버려야 할 표현은 매우 많습니다. ‘~에’ 다음에는 ‘**에 있다’와 같이 써야 합니다. ‘~에의’라는 말은 불명확하므로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하죠. ‘무게가 꽤 굉장한데’ ‘니네 아빠 굉장하다’ ‘니 형 키 정말 굉장하다’라는 표현보다는 ‘무게가 꽤 나가는데’ ‘니네 아빠 대단하다’ ‘니 형 키 정말 크다’와 같이 쓰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인 것처럼요.
초대라는 말 자체는 ‘어디로 초대’한다는 뜻이므로 그 앞에 나올 말은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시로 초대’가 ‘좋은 시에의 초대’보다는 더 좋은 표현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찬회에의 초대/어린이들은 내일에의 희망이다.’는 ‘만찬회로 초대/어린이들은 내일의 희망이다’로 써야 적절합니다.
“자연스러운 우리말 구성으로 느껴지지는 않으나 대체할 만한 표현을 찾기 어려”운 표현이라고 하니, 언젠가는 바뀔 거라 생각합니다. 김중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로’로 바꾸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군요.
안녕하세요. ‘~에의 초대’라는 표현은 어감이 어색한 것이지 의미가 불명확한 것 같진 않습니다. 김중태님은 ‘~에’ 다음에는 ‘**에 있다’와 같이 써야 한다고 하셨지만, ‘집에 가다’와 같이 목적지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시에의 초대’는 의미상으로도 명확합니다.
다만, ‘에’와 ‘의’가 중복되는데, 이것이 반자음(혹은 반모음)의 중복으로 발음상의 불편함 때문에, 표현이 어색해지고 있습니다. 좋은 표현은 정확한 의미전달과 동시에 어색함도 제거야 하고, 읽다보면 음절과 문장이 자연적으로 구분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김중태님은 ‘좋은 시로 초대’가 좋은 표현이라고도 했는데, ‘좋은 시에(로)의 초대’와 ‘좋은 시로 초대’는 어감 차이가 많이 생깁니다. ‘의’라는 명사수식조사가 없어지면, 문장이 끝났다는 느낌이 약해집니다. 흔히 ‘명사’로 문장을 축약할 때, 앞에서 나오는 표현이 마지막 문장을 수식하는 형태를 가지죠. ‘~에’가 어색해서 ‘~로’를 사용했는데, ‘좋은 시로의 초대’라고 해주는 게 자연스런 표현이 아닐까요.
덧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만 ^^; 표현이 어색할 때는 문장의 구조자체를 변경함으로써 자연스런 표현을 살려야 할 때가 있는데요, 저는 ‘좋은 詩로의 초대’나 ‘좋은 시의 세계로(의) 초대’로 표현해 주었으면 좀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시’를 한자로 표기해줌으로써 ‘기호화’하고 ‘대명사’의 느낌을 부여하거나, 혹은 ‘시’라는 단어에 ‘장소’나 ‘목적지’의 의미가 부족하므로, 장소의 의미를 갖는 조사와 어울리는 단어를 추가해줌으로써(‘시의 세계’) 표현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해 주는게 좋겠네요.
영 어색하긴 하군요
duppio님: 소유격 ‘~의’는 우리말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나쁜 표현 중 하나입니다. 일본말로는 ‘나의 집의 마당의 나무의 위의 새의 집’이라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내 집 마당 나무 위 새집’으로 줄어들죠. ‘나의 책, 나의 신조’라는 표현은 일제시대의 잔재입니다. ‘내 책, 내 신조’가 적합한 표현이죠.
‘파티에 초대한다’나 ‘파티로 초대한다’는 말은 문제가 없지만 ‘파티에의 초대’는 의미상 불명확합니다. 이 경우 처격조사 ‘에’와 소유격 조사 ‘의’를 쓰게 됨으로써 파티가 부사어인지 관형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즉 파티의 격이 처격인지 소유격인지 알 수 없게 되므로 의미가 불명확해집니다. 때문에 ‘~의’는 가능한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로의 초대가 더 좋을거 같긴한데..
아무튼 좀 어색한 말투긴 하네요 ㅎ
김중태님: 우선 예로 드신 ‘나의 집의 마당의 나무의 위의 새의 집’라는 일본어 표현이 한국어로는 어색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이런 예를 누가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의’의 표현이 ‘소유격’만 있는 건 아니죠. ‘역사의 흐름’과 같은 표현은 원래 ‘역사는 흐른다’라는 주어+술어의 형태를 ‘명사+명사’로 줄이면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형태죠. 혹은 ‘여론을 수렴하다’와 같은 목적어+술어 형태도 ‘여론의 수렴’이라고 사용되죠. 정규 국어 교육과정에서 배운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역사흐름’이나 ‘여론수렴’처럼 ‘의’를 빼도 되겠네요. 이 중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러운지는 문장속에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티에 초대한다’와 ‘파티에의 초대’를 보죠. 우선, 이상한 표현을 하나 만들어보죠. ‘파티에의 초대한다’. 이 문장 이상합니다. 이 경우 말씀하신대로 파티가 부사인지 관형사인지 알 수가 없는 비문이 되네요. 하지만, ‘초대’가 ‘초대한다’라는 서술어가 아닌, ‘초대’라는 명사로 존재할 때, ‘파티에의 초대’는 비문이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문법에서 ‘부사’는 명사와 대명사를 수식하지 못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명사를 수식하는 건 형용사(관형사)이죠. 그래서, 오히려 ‘파티에 초대’가 비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티에’라는 부사가 ‘초대한다’라는 동사를 수식해야 하는데, ‘초대’라는 명사로 끝나 버렸으니, ‘파티에의 초대’가 더 자연스러워지는 거죠. ‘파티로 초대’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초대’가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명사가 아닌, 행위을 표현하는 명사이므로 ‘파티에 초대’나 ‘파티로 초대’가 의미상 무리가 없는 듯 보입니다. ‘초대’가 ‘동사’처럼 여겨지는 거죠. 김중태님의 지적처럼, ‘의’의 과도한 사용은 의미파악이 힘든 문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부사가 명사를 수식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를 해주세요^^
결국, ‘파티로의 초대’는 의미가 불명확하지 않구요, Mr.Met님의 덧글처럼 ‘더 좋을 거 같은’ 표현이 된다고 생각되네요.
예. 말씀하신 것처럼 ‘파티로의 초대’가 ‘파티에로의 초대’보다는 더 나은 표현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_^
좋은 시집 사셨네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저 코끼리 코 같은 이미지는 다른 책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