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랫동안 이용했던 단골 치과와 안경점을 결혼 후 자연스럽게 나도 자주 가곤 했다. 치과는 과잉진료 안하고 친절한 곳이었으며 안경점은 지나가다 들르면 주기적으로 코받침을 교체해주고 안경알을 닦아주었으며 다리 나사를 조여주고 비틀어진 각도를 잡아 주었다. 또 명목상이라 하더라도 단골할인을 꾸준히 제공해주던 곳이었다. 꽤 만족하고 든든하게까지 여겼던 이 두곳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접고 다른 안경점과 치과를 물색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올 봄부터 잇몸에 통증이 있어서 치과에 가보니 한달 정도 매주 한번씩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그러마 하고 매주 치과에 갔는데 갈때마다 치과의사의 마케팅 일장연설 순서가 있다. 생각해보면 이미 작년부터도 스케일링하러 갔을 때에 압박이 있긴 했지만 올해들어서는 부쩍 그 강도와 레파토리가 다양해졌다. 예방의학차원에서 자기네가 설립, 운영중인 관리전문 치과 프로그램에 연회비를 내고 등록해라, 죽염소금 사라, 비타민 주사 맞아라 (응?), 어느 나라에서 임상실험한 프로바이오틱스 사라, 얼굴 가리고 입 벌리고 치료받는 와중에 옆에서 꾸준히 말시키고 심지어 치료받는 도중에 고개 끄덕이든, 네네라고 하든 대답까지 유도하는데에서는 더 이상 참기 어려워졌다. 치과 치료시의 통증참기보다 추가판매 압박의 스트레스가 더 고역이니 말이다. 지역 카페에 문의해서 몇군데 친절한 병원들을 소개받았으니 다음부터는 그쪽으로 가볼 생각이다.
안경점은 왜 미운털이 박혔을까. 올 여름 선글라스를 새로 장만하기 위해 이번달 초 안경점을 방문했다. 이러이러한 스타일과 모양을 이야기하고나니 몇가지 안경을 보여주겠단다. TV며 버스광고로 많이 봤던 골프의류 메이커의 안경을 보여준다. 골프를 안치니 해당 메이커의 인지도에 대해서도 모르겠고, 패션메이커에서 나온 시계가 그러하듯이 기능적으로 뛰어난지도 모르겠다. 가격은 일단 30에서 시작. 30을 기준으로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몇가지의 선글라스를 더 보여줬는데 보여주는 것마다 모두 그 메이커 제품만 보여준다. 모양도 그닥 마음에 드는게 없고 하여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자리를 피했다. 시내 서너군데 안경점을 더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백화점 안경코너에서 딱 찾던 스타일의 안경 발견. 가격도 적당했고 백화점 멤버쉽 할인에 아내가 갖고 있던 백화점 상품권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기존 안경과 선글라스의 유지보수를 위해서는 그 안경점에 계속 가긴 가야겠지만 다음 새 안경 주문까지 하진 않을듯 싶다.
단골의 장점이라는게 고객의 요구사항과 취향을 기억해주고 손님도 다른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눈치싸움하고 가격이나 품질에 대한 미심쩍은 마음으로 구입하는 것보다 마음 편해서 가는 것일게다. 반면에 이 치과와 안경점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오랜 친분 관계를 기반으로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과 불만족과는 상관없이 이익에 대한 추구가 느껴졌다. 거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파는 식당과 다르게 대체제가 충분한 업종이다보니 더 다른 업체 변경이 쉬웠다.
단골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반복적이거나 오랜 시간에 따라 만들어진 신뢰감 있는 관계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시장독점적이거나 경쟁업체보다 월등하지 않은 업장에서는 손님 간보기도 적당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