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4~5.5 부산여행 기록

By | 2024-05-11

지난 주말, 아내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는 두달 전에, 기차는 한달전에 예매해 두었는데 비 예보가 있어서 전전날까지도 취소를 고민했던 터였다. 날씨 서비스를 총동원해서 눈치게임을 벌여보니, 두번째날 오후부터 비 예보길래 진행하기로 했다. 여행 일정중 센텀시티 백화점 구경이 있었기에 비오면 그쪽 일정을 좀 늘이면 되겠다 싶었다. 여행과정 중 기록으로 남길만한 것을 적어둔다.

첫날 감천문화마을을 가기로 했다. 대략 충무시장, 충무동교차로, 토성역 등에서 버스 하차 후 마을버스 두어 노선 중 하나로 갈아타면 된단다. 시내버스에서 하차해보니 마을버스 올 시간까지는 20분 정도 남았다고 하고 감천문화마을까지는 도보 900여미터다. 20분 버스 기다리느니 900미터?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지도 앱의 도보 이동경로가 잘 나와 있고 실시간 위치도 잘 표시되니 도전해봄직했다. 그러나 실제로 도보 경로를 이동해보니까 곧바로 마을 사이 지름길로 안내하는데 상당히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 가끔 막다른 길들이 나와 무척 애를 먹었다. EBS의 “진짜 부산을 만나다“편으로 미리 예습을 하고 간 덕분에 아내에게 마을의 역사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줄 수 있었으나 그 보람을 상쇄하는 인고의 이동경로였다. 가는 도중 우리처럼 도보코스를 선택해서 반쯤 맛간 얼굴로 마을 길을 헤매는 몇몇 여행객들을 만났다. 동병상련이다. ‘이럴 줄 몰랐죠? 우리도 몰랐어요. 울지말고 계속 걸어요’ 랄까.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감천문화마을은 마치 기념품 상점가 같았는데, 어찌보면 소규모 인사동 거리같고 너무 북적거려서 정신이 없었다. 어린왕자 조형물과 사진 찍으려는 대기 줄은 길었다. 이 거리만 보러 오기에는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감천문화마을을 온몸으로 쎄게 느끼기 위해 도보로 걸어온다면 오가는 길도 고생일뿐더러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골목,계단을 북적대고 사람들이 다니는 것도 대단한 민폐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감천문화마을을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이 날 저녁 식사 겸 해서 가려고 했던 곳은 부산역 인근 노포를 검색해서 찾은 수복센타였다. 스지어묵탕이 유명한 메뉴라 하여 이것과 반주를 곁드릴 요량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까지는 아직 좀 여유가 있어서인지 서너자리가 남아있었다. 벽에 붙은 자리에 앉았다. 점찍어둔 스지어묵탕과 청하 한병을 주문했다. 사장님이 밑반찬과 물을 내어오시면서 여행객이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니, 스지어묵탕과 광어다다끼가 시그니처 메뉴인데, 두분이서 두가지를 다 시키시면 양이 많으니 2인 여행객을 위한 스지어묵탕 작은 것과 광어다다끼가 나오는 셋트를 권하셨다. 광어다다끼는 무어냐고 여쭈니 광어를 잘게 다져서 양념과 함께 뭉친거라고. 타다끼인지 다다끼인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비슷한 이름으로 일식 술집안주로 파는 낙지타다끼는 살짝 얼린 낙지를 다진 후에 와사비 등의 양념을 해서 둥글게 공 모양으로 뭉친 것이었고 참치나 소고기 타다끼 같은 것은 덩어리 고기 바깥쪽을 불로 그을린 후 얇게 편으로 썬 것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광어다다끼는 전자쪽과 비슷한가보다. 원래 시킬려고 했던걸 주문할까 하다가 감천문화마을 다녀오느라 에너지도 많이 쓴데다 메뉴를 권하는 사장님의 말투와 응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센스가 있으셨다. 탕이 먼저, 다다끼가 이어 나왔다. 스지어묵탕은 이것저것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고 광어다다끼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 함께 나오는 깻잎에 싸 먹으니 풍미와 맛에 눈이 번쩍 떠진다. 한손에 깻잎을 뒤집어 놓고 탁탁 치면 깻잎향이 강해진다는 것도 사장님의 시범으로 알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술을 잘 안마시는지라 일주일에 막걸리 1병을 둘이 나눠마시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인데 이날 둘이 청하 4병을 마셨으니 말 다했다. 아내와 여행내내, 여행에서 복귀하는 길에서도 몇번이고 이 음식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앞으로 부산여행에는 무조건 수복센타를 들르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수복센타를 갈 핑게로 부산여행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오후에는 비가 꽤 오던지라, 귀가 시간을 좀 앞당기기로 하였다. 연휴에다 주말이고 하니 당연히 표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코레일 앱에서 표가 보여도 금방 매진이 되었다. 어쩌다 잡은 표는 서로 떨어져 있는 표, 어디까지는 좌석, 이후 환승해서는 입석 뭐 이런식이었다. 역방향도 한번 예약했다가 취소했고, 슬슬 표 구하기를 포기할까 하던 즈음에 정방향으로 붙어있는 좌석표가 나왔다. 빛의 속도로 예약 성공. 기차시간이 되어 열차의 해당 자리로 가보니 아뿔싸, 이른바 가족석이라 불리우는 서로 마주보는 좌석이다. 8열과 9열이 정방향과 역방향 좌석이 서로 만나는 곳이고 중간에 접이식 테이블이 하나 있고 마주본다. 차라리 역방향으로 앞 좌석 등판을 보고 가는게 낫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앞쪽에 마주보고 갈 사람들이 타고나니, 이거 참 고개를 들자니 눈을 둘 데가 없고 다리를 움직거리기도 영 신경 쓰인다. 마주보고 앉은 남자도 건장하다보니 서로 표정은 평온하게 유지한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만 다리는 서로 닿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떨며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열차 운행시간 내내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했다. 잊지않으마. KTX 8열과 9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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