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때 음악을 틀어놓거나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걷는 일이 흔했다. 오래전부터 더 이상 CD를 구입하는 일은 없지만 애플뮤직이든 스포티파이든 스트리밍 서비스는 하나씩 끼고(?) 살았다. 아내에게 난청이 있었는데 해가 가면서 조금씩 증상이 심해졌다. 두어해쯤 전이었을게다. 차에서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있었는데 아내가 지금 음악이 나오고 있는 중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렇구나…”라고 하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부터 차량의 음악 기능은 아예 꺼놓고 지냈다. 차량의 미디어 장치에 음악이 재생되는 표시가 나는데 음악이 들리지 않는 상황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 쓴 에어팟도 오락가락 했지만 새로 사는대신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다. 아내는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데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들을 장치를 구입할 수는 없었다. 음악듣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상심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예전 우스개 중, 월드컵 전 경기 관람권과 당대 유명했던 어느 여배우와의 식사 1회권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그깟 공놀이”라는 댓글이 기억난다. 내겐 ‘그깟 음악’이었던 셈이다.
얼마전 아내가 인공와우수술을 한 후 청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다. 아내는 음악을 들어보고 싶으니 핸드폰에 음악을 넣어달라했다. 아내가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애플뮤직 가족요금제로 가입했다. 운전중에도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아내를 태우고 운전할 때는 8090 댄스가요를 주로 선곡한다. 아무래도 자주 들었던 음악이고 비트가 강하다보니 학습이 좀 더 쉬운 것 같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도 차량 오디오와 연결했다. 음악도 나오는데다가 내비 앱이 알려주는 이런 저런 정보들이 섞여 있으니 아내는 “우리 여보가 이렇게 시끌시끌한 속에서 운전하고 있구나…” 라고 놀라워했다.
방치해두었던 에어팟 1세대도 꺼냈다. 한쪽 유닛이 완전히 고장나 있었다. 충전도 되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겸사겸사 핑게 김에 에어팟프로2세대로 구입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커널형 이어폰은 여러개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했었다. 도무지 고정이 안되고 귓구멍만 아파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내 생애 이 귀 모양으로는 커널형 이어폰은 시도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프로에만 있는데 프로는 커널형이다. 어떻게 할까? 기능은 땡기는데 모양은 여태까지 실패만 해봤던 커널형. 애플 공홈의 장점중의 하나인 묻지마 환불 기능이 있으니 마음 편하게 한번 시도해보자 하고 구입했다. 헐 세상에. 귀에 넣는 순간 원래 내 귀에서 꺼낸 것처럼 착 하고 고정된다. 이 끝내주는 착용감이라니?? 여태까지 시도했던 그 커널형 이어폰들은 대체 어떻게 디자인됐던것인가 싶다. 소문대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은 어마어마했고, 다시 음악듣기의 즐거움이 시작됐다.
아내의 청각훈련을 돕기 위해 티비에 사운드바를 추가했다. 티비 뒷편에서 나오는 자체 스피커의 음질보다 훨씬 뛰어나니 다양한 주파수의 소리를 풍성하게 들으면 청각 재활에 좋을 것 같았다. 사운드바를 통하니 전에 안들리던 배경음악같은게 들리기 시작하고 앵앵 거리는 소리대신 풍부한 대역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내의 인공와우 수술로 음악듣기의 즐거움을 다시 얻었고, 뜻밖에 포기하게 되는게 하나 생겼다. 인공와우의 어음처리기는 귀 뒷부분 약간 윗쪽 자리 피부 내에 삽입된 임플란트 기기와 자석으로 서로 부착하게 된다. 어음처리기를 붙인 상태에서 모자를 쓰게 되면 모자가 잘 써지지 않거나 어음처리기가 떨어질 수 있다. 조심스럽게 쓴다해도 마이크 장치가 모자에 가려지니 소리 입력이 방해받게 된다. 모자 밖은 자력이 약해 붙지 않는다. 조그만 주머니를 만들면 넣을 수도 있겠으나 임플란트와 거리가 멀어지면서 신호가 전달이 안된다. 아내는 벙거지 모양의 모자를 즐겨 썼는데 아쉽게 됐다.
사실 올 여름을 대비해서 통기성이 좋은 등산모자를 하나 사 놓고 있었다. 나는 새 모자를 쓰고, 모자를 쓰지 못하게 된 아내와 함께 나들이 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 썬블럭 잘 바르고 썬글라스 잘 챙겨나가면 되지 “그깟 모자”따위가 대수인가. 새 모자는 지난 주 본가에 갔을 때 가져가서 아버지께 써 보시라고 슬쩍 전해드리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