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용 도슨트님께 감사한 일

By | 2023-07-13

아내가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 열심히 재활을 하던 중,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라울뒤피 전을 알게 되었다.  전시회 기간 중 오후에 병원 진료가 예약된 날이 있어서 그날 오전에 전시회를 가기로 하였다. 전시회 정보를 보다보니 전시해설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고 우리가 가는 날은 김찬용 도슨트가 해설을 해주시는 날이다.  잘됐다. 그냥 훑고 지나갈수도 있는 작품을 도슨트가 작품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 해줌으로써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다. 작품설명 시간에 맞춰서 관람할 수 있으면 행운인 이유다. 그런데 도슨트가 작품 앞에서 설명을 하면 주위로 관람자들이 모여서서 해설을 듣고, 다른 작품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반복할텐데,  수술 경과가 좋긴 하지만 여러 사람이 운집한 곳에서  발표자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다.  조금 걱정이 앞선다. 

다행이 갖고 있는 인공와우 제품의 주변기기 중 무선 마이크가 떠올랐다.  이걸 혹시 사용해보면 어떨까?  일회용라이타 정도 크기의 장치인데  마이크 기능과 무선 송신 기능이 있어  마이크로 들어온 소리를 인공와우 어음처리기까지 쏴 준다.  회의시간에 발표자가 옷깃에 꽂거나 근처에 두고 이야기를 하면 인공와우 사용자에게 음성이 전달되는데, 아무래도 말하는 이 가까이에 둠으로써 주변부 소음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발표자가 말하는 것을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도슨트가 작품 설명할 때  혹시 무선 마이크를 착용해주실 수 있을까 궁금했다.  예술의 전당 규정상 도슨트가 인공와우 사용자를 위해 무선 마이크 착용하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매뉴얼이나 규정이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이 정도는 도슨트가 재량껏 결정할 수 있을지 말이다.  예술의전당에 문의를 해야할까 도슨트에게 문의를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도슨트에게 문의하기로 했다.  예술의전당과 기획사와 도슨트의 계약 관계가 어떠한지 잘 이해할 수는 없어서 어느 쪽에 문의를 넣는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김찬용님은 SNS를 통해 직접 소통하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연락 드리는데 다소간의 부담이 덜한 편이었다.  만약 전시장이나 기획사의 승인이 필요하다면 그때 다시 그쪽으로 연락해보면 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DM을 통해서 이러저러한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무선마이크 착용이 가능한지를 여쭤보았다.  크기는 이만하다. 녹음 기능은 없다. 현장에 있는 인공와우 수술자에게 1:1로 음성만 전송하는 것이다. 등등을 설명드렸다.  흔쾌히 그렇게 해주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당일에 미리 얘기만 해달라 하셨다.  다행이다.  

우리 가족의 사정이 있다하더라도 도슨트와 관람자, 기획사, 예술의 전당에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 절차상으로도 그러하고 기계적으로도 문제가 생겨서는 안된다. 만약에 무선마이크를 착용하고 관람객 앞에서 설명하는 도중 갑자기 기계에서 배터리 없다는 경고음이 삑삑거리기라도 하거나, 옷깃에 끼워둔 클립이 빠져 바닥에 떨어져서 관람객 사이로 굴러가기라도 하면 피차간에 난처한 일이다. 배터리도 완충시켜놓고 이렇게 찝으면 될까 저렇게 찝으면 될까 옷깃에 미리 대보기도 했다. 

전시회날, 개장시간보다 일찍 로비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도슨트의 작품설명 동선을 문의하니 출입구 들어서면서부터가 시작점이라 하였다.  그러나 설명을 시작하러 전시장으로 들어가실 때 전달드리면 늦는다. 동선을 흐트러뜨려도 안되고 도슨트의 등장부터 쏠릴 관람객의 집중과 관심을 분산시켜서도 안된다. 전시회 공간과 그림이 그러하듯 도슨트 역시 전시회의 일부이고 도슨트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공연일 수 있다. 관람객이 기다리는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도슨트의 무대다. 설명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에서 루틴을 깨서도 안된다. 그러니 전시장이 아닌, 로비에 처음 오실 때부터 뵈어야 한다.  초조히 기다리던중 로비 반대편에서 오시는 김찬용님 발견. 얼른 가서 인스타로 DM드렸던 이라고 말씀드리고 아내도 함께 인사를 드렸다. 마이크를 전달 드리고 이따 옷깃에 끼워주십사 부탁했다. 김찬용님은 알겠다고 하시고 걱정말라며 이따 뵙겠다고 하셨다. 찬용님과 헤어진 후 아내는 어떻게 한눈에 알아봤냐고 물었고 인스타유튜브로 예습했다고 했다.

전시회 개장 시간이 되어 작품전시 설명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김찬용 도슨트가 오셨고 옷깃에는 무선 마이크가 꽂혀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감도와 음량이 모두 좋다고 한다. 작품간 이동을 할 때마다 관람객 인파는 안팎과 앞뒤가 뒤바뀌고 작품으로부터의 위치도 가까운데 섰다가 다음엔 멀리 서기도 하고 계속 달라졌다. 어쨌거나 인파 사이 틈으로 작품이 보이는 장소에 서기만 하면  설명을 듣는 것은 아무 문제없이 인공와우로 전해졌다.  해박한 지식에 유머를 골고루 섞여서 설명을 해주시니 지루할 틈없이 작품 설명시간이 흘러갔다. 특이한 점은, 김찬용님은 관객 틈 사이로 어린이 관람객들이 보이면 작품이 잘 보이는 앞쪽으로 나올 수 있도록 챙겨주었다.   앞으로 나온 어린이들에게 작품의 느낌이나 작가의 의도를 묻기도 하면서 깜짝 토크쇼의 사회자 같은 모습도 보였다. 몇번 이 분의 작품 설명을 들은 사람이라면  팬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을만큼 작품설명 시간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힘이 좋았다. 

한시간 정도 작품 설명이 끝났다.  출구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시길래  다시 한번 도슨트께 인사드리고 무선마이크를 회수(…)하였다. 그때  잠깐 다른 관람객과 인사 나누시는 중이었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쪽으로 집중해주시면서 인사해주시고 다른 기회에 오시게 되면 언제든  요청해달라 하셨다. 

수술로 힘들었을 아내도 간만의 미술전 관람으로 기분 전환이 됐고 도슨트의 작품 설명도 잘 알아 들을 수 있어서 수술하길 잘했다는 만족감에 상당히 고무됐던 하루였다. 

국내 인공와우 수술자 중 무선마이크를 구비하고 있는 사람. 그 중에 미술전에 갔는데 도슨트가 설명하는 시간에 방문할 사람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면 우리도 처음 경험해보지만 도슨트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뜬금없는 DM으로 낯선 요청을 한 이에게 따뜻하고 충분한 호의를 베풀어주신 도슨트 김찬용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