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없는, 추억 속 음식

By | 2025-09-03

어렸을 때 할머니는 서해안 대부도에 사셨다. 초등학교 방학식을 하면 그 다음날 바리바리 방학숙제와 그 달치 만화잡지, 프라모델을 싸놓고 다음날 첫 배로 대부도로 갔는데. 지금에야 대부도까지 시화방조제가 놓였고 제부도로 해서도 차로 바로 갈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가거나 선감도를 통해서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대부도 가는 날 새벽에 어머니가 깨우면 말 그대로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서 갈 준비를 했다. 신났다는 얘기다. 대충 눈꼽 떼고 지금으로 치면 구로구 개봉동 입구까지 걸어나온 후 인천 연안부두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연안부두에 도착해서 뱃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대충 요기를 해야했는데 그때 먹었던 것이 역앞 광장 손수레에서 파는 순두부였다. 들통에 담아온 순두부를 두어국자 떠서 국사발에 담고 양념간장을 끼얹어주면 그때 의자가 있었는지 그냥 서서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새벽에 먹는 순두부는 어린 나이였어도 맛이 기가막혔다. 방학은 오늘부터 시작이고 나는 할머니댁에 간다는 즐거움에 순두부까지 먹고 있으니 오죽 행복했겠는가.

고추기름을 내고 쇠고기니 해물이나 잔뜩 넣고 계란한알 깨넣은 얼큰 순두부가 대세가 됐지만 지금도 가끔 시장에서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발견하면 사다가 비슷하게 해먹곤 한다.

방학 내내 대부도에서 지내다보면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물론 동네 다른 집 음식도 먹어보곤 하는데 그때 맛있게 먹었던 것이 바지락 만두였다. 동네 할머니들은 진작에 별명들을 갖고 계셨다. 늘 입에 달고 사시던 두통약 이름을 딴 명랑할머니, 소를 키우셨던 소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인천에 살다 오셨다고 해서 인천할머니였다. 바지락만두는 소할머니가 만드시는 만두인데, 서해안 섬이라는 특성상 바지락이니 동죽이니 하는 조개류가 마을 앞 갯벌에 지천으로 널렸다. 들통 하나가득 조개찜,굴찜,소라찜을 해먹었고 낙지며 망둥이회도 심심찮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기류를 구하기 어려운 섬마을이니 만두소에 넣을 대안으로 삼은 것이 조개류다. 바지락이었는지 동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고기만두나 김치만두처럼 만두소의 주 재료가 바지락이다. 국그릇에 하나만 담아도 꽉 차는 크기라 한두알만 먹어도 (=만두국 한두그릇과 동의어) 든든했다. 아마 그때도 잘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겠지만 전무후무하게 독특하고 맛있는 만두를 맛볼 수 있게 해주신데 대해 너무 늦었지만, 감사드린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 마지막으로 하나 더 꼽아보자면 우리 할머니가 해주시던 전 찌개^^;. 집들이 대개 그러하듯 명절이 되면 이러저러한 전들을 부치게 되고, 남은 전들은 냉동실로 간다. 이후에 뎁혀먹거나 전 찌개의 재료가 되는데.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전 찌개가 먹기 싫었나 모르겠다. 전은 좋지만 전 찌개는 잘 내키지가 않았다. 기름에 구운걸 얼큰한 탕으로 끓이니 튀김옷과 원 재료가 분리되고 부서지면서 이 덩어리가 동태전에서 나온 건지, 산적에서 나온건지, 동그랑땡에서 나온건지 알 수 없는 혼돈의 탕이 되는 것이 못마땅했나보다. 어쩌면 ‘어른들의 음식’ 분류표에서 하수와 고수 분면에 놓았을 때 확고한 고수쪽의 음식이 아닐까 싶다. 전 찌개야말로 어디서 사먹었을 때 비슷한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고,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 중에서 제일 투덜거리고 먹었던 죄를 지은 음식이라는 점에서, 어디 가서 (이제 와서) 돈내고 사먹기가 내키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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