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쯤 전, 2023년 6월의 일이다. 아내 인공와우 수술 이후 경과를 추적하기 위해 수서역을 통해 병원을 오가던 때였다. 병원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역 인근에 내려 역사로 향하던 중. 길가 버스정류장 뒷편으로 사람이 한명 땅바닥에 앉아있고 그 옆에 자전거와 남자 한명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일까… 하고 지나가면서 보니 앉은 사람이 얼굴에서 피를 닦아 내고 있었다. 아내에게 잠시 있어보라고하고 가보니 땅바닥에 앉은 이는 할아버지셨는데 얼굴 여기저기 피를 흘리고 계셨고 서 있는 남자는, 괜찮으시냐, 병원에 안셔도 되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자전거를 뭐 그리 세게 달리느냐며 질책했다. 남자가 자전거로 인도를 주행했고 버스정류장에서 나오던 할아버지와 충돌한 것으로 보였다. 할아버지께 어디어디 다치셨냐고 여쭈니, 바지를 걷어보여주셨는데 양 무릎도 다 까져있었다. 양쪽 손목과 코에는 멍이 있었다.
남자에게 119에 신고했느냐고 물으니 안했단다. 일단 119에 신고해서 전후사정을 설명하니 경찰과 함께 곧 출동하겠다고 하였다. 신고를 마치고 가해자에게, 할아버지께 연락처 드렸냐고 물었다. 안드렸단다. 가해자로부터 연락처를 받아 할아버지 폰에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남자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리는걸 확인했다.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역 입구 계단에 앉혀드렸다. 잠시 후 구급차가 오는게 보였고 길가로 나가 팔을 휘저어 위치를 알렸다.
구급대원은 혈압과 체온을 재고 사고 경위, 부상 부위, 부상 정도를 확인했다. 잠시후 도착한 경찰은 사고사실과 경위를 확인 하였고 할아버지께 교통사고접수 또는 합의 중 원하시는걸 선택하실 수 있다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굳이 신고까지는 필요없겠다 하셨다. 경찰은 만약 합의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오늘 사고내역 대한 기록이 있으니 연락하시라 했다. 구급대원이 할아버지께 병원으로 모실지도 여쭤봤는데 어르신은 거동이 가능하니 일단 귀가하신 후 자택 근처에서 치료를 받으시겠다 했다. 기차 시간도 얼마 안남았으니 그게 낫겠다 싶으셨나보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모두 철수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쉬었다 내려가신다 하셨고 우리도 슬슬 기차시간이 되어 역으로 내려갔다. 대합실에 있다보니 할아버지도 잠시후 불편한 걸음걸이로 역으로 내려오셨다. 조심해서 귀가하시고 치료 잘 받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인사를 꾸벅하고 나니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시며 잠시 기다려보라셨다. 지갑을 꺼내어 만원짜리 석장을 꺼내시면서 받으라고 하신다. 아이구 아닙니다요 하면서 펄쩍 뛰었으나 연거푸 아냐 아냐 이거 받아. 가서 맛있는거 사먹어, 라고 하시며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넙죽 감사인사 드리고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받아 들었다. 할아버지는 승장장으로 내려가시고 그날의 인연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객지 나오셨다가 다치셔서 난처한 상황에서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드셨길래 용돈까지 챙겨주셨을까.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짠한 묘한 감정이었다.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는 아마 당시에 더운날이라서 아내와 삼계탕을 사먹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날 쥐어주신 용돈으로 맛있는거 잘 사먹었습니다 하고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 겸 보고 드린다. 어르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