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물먹이기

By | 2019-12-10

고양이 녀석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해둔 물그릇이 원래 밥그릇 옆에 있었다. 남는 도자기 국그릇을 사용하고 있으니 고급진 물그릇이다. 밥그릇과 너무 가까워도 안좋다고 하여 적당히 떨어뜨려 놓았다. 밥먹고나서 가끔 물 마시는걸 보긴 하는데 녀석은 사람이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면서 먹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한두살때무렵 세면대에서 세수하고 있을 때 녀석이 양변기로 뛰어올라와서 앞발을 세면대에 걸치고 쳐다본 적이 있었다. 물 마시고 싶어서인가 싶어 손바닥을 펴서 수도꼭지 아래 대고 녀석의 입가쪽까지 물을 흐르게 해주었다. 예상대로 한참을 그렇게 물을 받아먹고나서부터는 자기도 좋았던지 그때부터 두어해를 그렇게 물을 마셔왔다. 물 마시고 싶으면 덜커덩 하면서 양변기 위로 뛰어 올라가서 세면대에 앞발을 걸치고 기다리는 것이다.

반년쯤 전부터는 좀 바뀌었는데 일단 양변기 위로 뛰어올라가는 것까지는 같지만 세면대에 다리를 걸치진 않고 그냥 앉아서 기다린다. 그러면 계량컵에 물을 따라서 컵 주둥이 앞쪽 뾰족한 쪽을 가까이 대주고 녀석은 앞 부분에 모인 물를 혀로 핥아먹는다. 마땅한 컵이 없어서 주방에서 보이는대로 집어온 계량컵인데 이때부터 녀석의 전용물그릇이 되었다.

[계량컵으로 물먹이기]

가끔 흐르는 물을 따라가다가 허공을 핥아댈 때가 있는데 그때 손바닥을 대고 손에 물을 흘려보내며 혀끝에 손을 대어 물마시기를 도왔다. 그러다보니 종종 계량컵에 물을 받아 손바닥으로 흘려보내주어 마시게 하는 경우도 있다.

[계량컵에서 손바닥으로 물 흘려 마시게 하기]

겨울이 되면서 찬물보다 따뜻한 물이 어떨까 싶어 한번 미지근한 물을 줘 봤더니 찬물일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물을 마셨다. 뜨거운걸 못먹는 사람을 일컬어 고양이혀라는 말이 있던데, 그래서 물 온도는 미지근한 정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확실히 찬물일때보다 미지근한 물일 때 혀를 더 빨리 놀려 물을 핥는다.

양변기위에 뛰어올라가는 소리를 대개는 알아차리고 바로 가서 물을 주지만 간혹 조용히 올라가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걸 뒤늦게 알고나면 무척 미안하다. 집에 있을 땐 항상 녀석의 동태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눈에서 안보이고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면 화장실에 가봐야 하니까 말이다.

양변기위에서 물마시기가 일상이 되면서 아침엔 녀석과 화장실 선점 레이스가 열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사람도 화장실이 급한데 집사녀석 일어났다고 얼른 양변기에 올라가서 물달라고 기다리고 있을 땐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지만 녀석도 밤새 물 마시고 싶던걸 참고 있던터라 급한건 피차 마찬가지. 고양이가 먼저 양변기에 뛰어 올라가느냐, 사람이 먼저 양변기 뚜껑을 열고 앉느냐의 문제다. ㅎㅎ.. 대개 녀석에게 양보하는 편.

더운 물 나올때까지 틀어놓고 기다리는 것, 3~5분 정도 꼼짝없이 녀석의 물그릇을 들어주고 마시는 속도에 맞춰 계량컵을 기울여 앞쪽에 계속 물이 고이게 해주는 것, 아침 화장실 선점의 문제 등 번잡스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라도 물을 마셔준다는 것은 고양이 건강상 매우 중요한 장점이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물 시중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