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면 위 내시경 후기

By | 2011-06-13

올해 회사 건강검진에서는 처음으로 위 내시경을 받아보기로 하였다. 여태까지 위검사는 흰 페인트같은 약을 마시고 기계위에서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뒹굴렀다가 하는 위조영술만 받아왔었는데, 지시사항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과정이 은근히 번잡스러운데다가 한번도 내시경을 받아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늘 찜찜함은 있던 터였다.
대장내시경은 수면으로 지난 번에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 위 내시경도 수면으로 할까,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가 근처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비수면 위 내시경도 할만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비수면 위내시경을 강력추천한 사람은 한 명이었던것 같다 -_-;;) 비수면에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지난 번 수면대장내시경 경험을 되새겨보니 비몽사몽 취한 상태로 한두시간 누워있어야하고 하루종일 그 기운이 남아 있어서 하루를 어리버리하게 보낸 기억도 비수면에 도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 비수면은 그냥 꾹 참고만 있으면 5분안에 끝난다고 하니 정신줄 놓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 비수면 상태에서의 고통과 불쾌감만 견딜 수 있다면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사실 그거다.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얼마나 헛구역질을 하며 침을 질질-_-흘릴 것인가 하는 것.
인터넷에서 여러 후기와 댓글을 찾아보니까 비수면을 추천하는 경우는 5%~10% 정도, 나머지는 죄다 수면으로 하길 추천하는 것 같다. ㅎㅎ 은근 불안감은 커져가고. 아무튼 검진날 아침이 되어 병원에 갔고 다른 검사들 다 끝나고나서 마지막으로 내시경을 하는 순서가 되었다.
위 속 거품을 없애는 약이라면서 일회용 소주잔으로 물약을 한잔 준다. 그냥저냥 마실만하다. 주사 한대 맞는단다. 위장의 움직임을 느리게 하는 주사란다. 꽤 따끔하다.
주사맞고 나와서 대기실에서 5분쯤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안으로 들어오란다. 그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퀴달린 침대에 눕혀져서 회복실로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수면 내시경을 한 사람들이다.
내시경이 들어갈 때 자극을 덜 느끼라고 목구멍에 마취약을 뿌릴건데 따갑고 쓴맛이 날거란다. 긴 대롱이 달린 스프레이를 목구멍에 대고 칙칙 뿌린다. ㅋ. 따갑고 쓰다. ㅎㅎ 잠시후 목구멍이 뻐근하면서 뻑뻑한 느낌이 난다. 간호사 한명이 케이블이 달린 시커먼 장치를 들고 들어온다. 어느 SF영화에서 본 우주괴물의 몸뚱아리에서 한 부분을 뜯어낸 것 같기도 한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_-;
침대에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우란다. 머리맡엔 부직포 같은 천이 깔려져 있다. 입에는 둥그런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뭉치를 물린다. 내시경을 조작할 때 입을 오무리면 안되니까 그 구멍을 통해서 내시경을 넣을 요량일게다. 숨은 천천히 크게 쉬란다.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것이다.
운명의 시간이 왔다. 간호사가 뒤에서 머리를 붙잡고 의사가 내시경을 집어 넣는다. ㅋ. 목이 잠시 이물감이 느껴지더니 이야 쭉쭉 잘도 들어간다. 이건 마치 해수욕장에서 신는 쪼리 슬리퍼 한켤레를 목구멍으로 삼키는 기분이다. ㅋ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토할만큼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목구멍과 식도, 그리고 뱃속에 뭔가 낯설고 거친 물체가 꿈틀대고 있다는 느낌뿐.
속으로는 연신

‘와! 푸하하. 이 녀석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미치겠군~ 살살 넣으라고! 이 망할 자식아!’

라거나..

‘오우! 젠장. 뭐지 대체 이 느낌은?! 제기랄. 환장하겠군…아압~ 푸흑. 적당히 해! !!!’

같은 생각이 들었다. ㅋㅋ
카메라가 달린 케이블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촬영을 하는데, 의사가 손으로 쥐고 들락날락 하는 거리가 생각보다 길어서 좀 놀랐다. 뱃속에선 의사의 손놀림에 맞춰 쿨렁쿨렁 장기를 건드리는 느낌이 나고. 그리고는 한 2~3분 정도 한 것 같은데 다 끝났단다. 내시경을 뺄 때도 역시 넣을 때처럼 쪼리 슬리퍼가 후두두둑~ 딸려 나오는 느낌으로 마무리.^^;
음. 비수면 내시경을 해보니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평소 모험을 즐기고(ㅋㅋ) 정신줄 놓는게 싫고, 까짓거 눈 딱감고 2~3분 참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만하다. 게다가 속된 말로 똘끼있고 비위가 강한 편이라면 한번 도전해보도록 하자.

15 thoughts on “비수면 위 내시경 후기

  1. 민댕

    아악
    침대위에서다리를베베꼬고읽었다는!
    내목구멍에도걸쳐있는것같아!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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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f Post author

      민댕// ㅋㅋㅋ 신세계가 열릴 것이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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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냥랄라

    하..전 수면내시경 했는데 이 글보고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듭니다ㅋㅋㅋ 위장조영 할 때는 좌우로 구르다 검사대에서 웃음이 빵 터져서 곤란했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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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f Post author

      그냥랄라// 전 복부초음파할때 미끄덩한 젤 바르고 배랑 갈비뼈랑 옆구리를 문질문질할때 웃겨서 아주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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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tarshit

    강력추천 1人… 신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 전 무수면 대장에 도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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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f Post author

      starshit// 크흑. 무수면 대장 내시경은 굉장히 넘기 어려운 벽 같네요. 식당에서 삼겹살 혼자 구워먹기 정도의 결심이 필요할듯 합니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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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rchung

    와 직접 내시경 검사 받는 느낌이 드는 글이네요.
    저도 수면 내시경만 몇번 받다가, 비슷한 생각에 비수면 위 내시경 받았는데…
    그 이후론 무조건 수면으로 합니다.
    전 죽는 줄 알았어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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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f Post author

      drchung// 맞아요. 겪어보니까 누구한테 추천하긴 어려울거 같아요. 사람마다 편차가 심한거 같더라구요. 아프기보다는 그 기괴한 불편함이 더 힘들듯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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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뱅어

    이유없이 픽픽 쓰러지던 고3때 건강검진 받자고해서 위내시경을 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입으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뱉으라고 잘못 알아듣곤
    지옥을 경험했었습니다. 입으로 들이마시니 입 안으론 내시경이 있는데
    숨쉬기 위해서 기도가 좁혀지고 으으.
    전 차라리 대장내시경이 다 나았었습니다. 전 둘다 비수면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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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hof Post author

    뱅어// 어 뱅어야!! 이 녀석 오랫만이네. 뱅어가 몇이지? 이제 시커먼 총각 다 됐겠네. ㅎㅎ 아부지도 안녕하시지? 메일 보내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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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뱅어

    hof//네 삼촌 오래간만에 불현듯 생각나서 들어와봤는데 역시 건재(?)하시군요 ㅎㅎ
    시커먼 총각이 되어 올해 26으로 아뢰옵니다(_ _) 아부지도 안녕하시구요 ㅎㅎ 메일은 제가 알바를 하는 이곳에선 확인 할 수 없어 간단히 남깁니다! 집에가서 메일 확인하고 답드릴께요 ㅎㅎ
    덧,예전에 삼촌의 ‘그’배너가 없어져서 좀 아쉽네요ㅎㅎ 중독성있고 재미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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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hof Post author

    뱅어// 크헉. 26…….-_-;; 음. 배너는 생각난김에 복구해놨다. 첫화면 가면 오른쪽 위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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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모래마녀

    대장 내시경은 비수면이라도 아무렇지도 않을거 같은데 위 내시경은 무서워요.
    목구멍에 들어갈 때 혓바닥 안쪽에 칫솔 넣는 기분인가요?
    제가 그런 토하는 느낌을 너무 싫어해서요. ㅜㅜ
    징그러운걸 보거나 느끼는 비위는 매우 강한편인데 헛구역질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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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Pingback: 올해 건강검진때는 알레르기 검사를 한번… « @hof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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