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 문장들이 있다. 감정의 한복판에 정통으로 와서 꽂힌 장면, 말. 그런 것들에 대한 기록.
걱정말고 일하세요. 정치는 내가 할게요.
예전 회사 서비스가 함께 일하던 12명과 서비스 전부가 대기업으로 인수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서비스에 대한 회사의 기대가 가시화되면서 소문과 압박으로 체감되었다. (아마) 우리 모두는 그런 부담감을 감당할 훈련도, 전후사정을 물어볼만한 인맥도 없던 상태로 찝찝하고 불안한 상태였다. 12명 중 함께 온 보스 e가 어느 날 이야기했다. 걱정말고 일하라고. 정치는 자신이 한다고. ( 정치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설득과 협의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는 사업부장이었지만 어느 팀원보다 geek하고 techy했으며 오덕스러운 사람이었다. 새벽 서비스 점검으로 개발자, 기획자들이 밤샘근무를 하게되면 현업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며, 먹을 것 한보따리를 싸와서 함께 밤을 같이 지새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이다.
아마 사내정치를 해본 일도 없었을 것이며, 있다 한들 조직의 규모가, 말하자면 끕이 다른 곳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천여명이 일하는 회사에서 자신 역시 그 조직의 일원이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11명의 팀원들과 팬덤이라 할만큼 열성적인 사용자층을 갖고 있는 서비스의 총책임자로서, 어찌 그의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세월이 지나고나서야 그때 서비스가 산으로 가지 않고, 그 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이 휘둘리지 않도록 바람막이가 되어준 것이 참 대단한 일이었구나… 싶다.
야. 그거 당장 그만해.
일이란게 고객이나 현업의 요구사항과 판단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결정권자들이 설정한 목표와 과제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몇해전 일이 하나 뚝! 저~ 위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다. 어느날 출근했더니 저 윗분의 의중에 따라 이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고 그 분야를 해왔던 우리 회사에서 맡기로 했고 그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 몇몇 뽑히게 되었다. 본부장급 한명, 팀장 하나, 과장 둘이 처음에 들어갔고 (그 와중에 난 또 차장이 되고..) 나중에는 더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었다. 출퇴근도 부천에서 분당까지 다녀야했고 그 시절에 외곽순환고속도로 중동IC부근 화재로 서너달 교통지옥에 시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윗쪽 회사의 CEO가 바뀌었고 그 일을 지시했던 사람은 사라지면서 일의 명분이나 절박함은 사라졌는데도 계속 일은 해야하는 나날이었다. 적극적인 협업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걸 중단하자니 무슨 논리로 누가 나서서 누구를 설득해야한단 말인가.
이게 일을 하는건지, 급류에 휩쓸려가는 뗏목에서 하루하루 잠들고 깨어나는 환상속에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회사에 신입 CSO(최고 서비스 관리자),C님이 오게 된다. 계속 분당에 왔다갔다하는게 무슨 일이냐며 보고를 하라하여 우리 팀장과 함께 보고를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 장시간의 회의도 아니었다. 경과 상황을 듣던 그 임원은, 아 ㅆㅂ.. 야 그거 때려쳐. 라며 팀장에게 “우리쪽 창구는 누구야?”부터 시작해서 당장 계약파기와 프로젝트 드롭, 파견 철수를 결정했다.
그 책임과 뒷수습은 해당 임원의 몫이었겠지만 몸과 마음은 고달프고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여러명의 난감한 회사생활이 한순간에 해결된 것이다. 친한 다른 팀장에게 그 임원과 일하기 어떠냐고 언젠가 물었더니 “그분은 아버지같은 분이죠”라고 대답했다.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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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0만 아니라면, 다음에 너를 팀장으로 고려하고 있다거나 상장할 때 스톡옵션 두둑히 챙겨준다는 약속을 하는 것도 보스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이 이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하는 고통,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로서는 해결하거나 전망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외면한다면 그 미래까지 이 구성원이 이 회사에 몸담고 있기나 할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허언인지 굳은 결심인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 수 없는 모호함이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마 선언하고 실행하는 것은 , 직책자 역시 자신 역시 조직의 역학관계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부딪혀야하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렇게 회사생활하고 저렇게 조직구성원을 배려하라고 말하기보다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이다. 페북에 근사한 링크 10번 퍼나르고 부하직원들한테 받은 좋아요 100개로는 얻을 수 없는.
“걱정말고 일하세요. 정치는 내가 할게요.”라고 하신 분, 정말 대단하시네요. 공감합니다. 지금쯤 ‘사내 정치의 달인’이 되셨을런지 … T-T
GOODgle// 이제는 함께 일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여전히 좋은 평이 자자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