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초, 아랫집에서 누수가 된다는 관리사무소의 전화를 받았다. 다행이 집에 있었기에 방문하시라 하였고 우리집의 계량기며 보일러실, 분배기, 아랫집에서 누수되는 부위의 우리집 바닥쪽을 살폈다. 우리집 쪽에서는 누수되는 흔적이 육안으로는 발견되지 않았다. 누수탐지업체를 불러 누수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 방문하면 우리집이 누수의 원인이든 아니든 얼추 30여만원이 소요된다. 이 비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일단 피해자 쪽에서 누수탐지 업자를 부른 후 누수가 윗집이면 윗집에게 비용청구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민사소송에서의 입증책임에 따라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윗집이 원인이 아니라면 어찌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니면 다음 의심가는 집 조사 후 그 집이 원인이면 그 집에 앞집 비용까지 모두 청구라는 의견이 있었는데, 다음으로 지목된 집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층을 거쳐서 벽 사이로 흐르다가 특정 층에서 누수가 터져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럴 경우 마지막으로 지목된 집에서는 그동안 헛다리 짚은 다른 집의 탐지비용까지 수백만원을 뒤집어 써야할 우려가 있다. 이번 우리집의 경우는 우리가 먼저 누수탐지업자를 불렀고 아래층의 집주인에게는 만약 우리가 원인이 아니라고 판정 결과가 나오면 탐지비용의 1/2을 부담하시라고 제안했고, 아랫집주인은 처음에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니 윗집에서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반드시 바로 윗집이 원인이 아닐수도 있어서 대각선으로 새거나 몇층을 건너뛰어 누수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설득했고 윗집 주인은 몇시간 고민 후 그러마하고 동의했다. 누수 탐지비용은 우리가 원인이면 당연히 부담해야할 비용이고 원인이 아니라면 아래집 누수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의 면책비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누수 탐지업자가 와서 압력 테스트 및 청음 테스트로 누수 지점을 찾기 시작했고 반나절만에 누수 의심 지점을 지목했다. 이때부터 극강의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의심 지점을 해머로 부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번째 지점을 지름 20cm 정도 부쉈는데 누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온 방바닥이 쿵쿵 울리고 앉아서 지켜보자니 해머질을 할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다. 주위 집들에게 이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울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두번째 의심 지점을 어른 손바닥만하게 파서 콘크리트를 꺼내다보니 물에 젖은 흔적이 보였다. 다행이다. 정확한 누수 지점 확인과 보수를 위한 작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름 30cm 이상으로 부수어 냈다. 역시 소음과 진동이 대단하다. 해머로 두들겨 깨다가 (일명 뿌레카 라고 하는) 해머드릴까지 등장해서 파냈다. 사실 그동안 또 다른 걱정의 축이었던 것은 복구비용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30분 동안 맹렬하게 방바닥을 부수는걸 경험하니 보험처리건 그냥 돈으로 물어주건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누수 공사 비용은 보상이 되는데 공사를 위해 파헤쳤던 가해자쪽 인테리어 비용은 보상이 안된다거나, 자기부담금이 얼마가 들어가는데 우리집도 들어가고 피해집마다 따로따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이유로 고민들이 있었는데, 그저 빨리 이 진동과 소음, 먼지천국,단수 사태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누수의 원인은 집으로 들어오는 냉수 배관이 터졌던 것인데 이런 저런 해결 방법 중 배관 일부를 잘라내고 교체하는 공사가 됐다. 업자분은 배관의 상태, 공사의 규모, 기간, 비용, 얼마나 이 집에 더 살 것인지 등 여러 요소들을 감안하여 복구방안을 제안해주었고 추천안대로 진행한 것이다. 누수탐지와 배관 수리는 하루만에 끝났고 다음날 오전부터는 미장과 원상복구 과정을 반나절에 마무리했다. 씽크대와 붙박이 수납장을 해체하고 옮기고, 다시 원위치해서 원래대로 조립하는 과정이 상당히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었다. 겸사겸사 버려야할 물건들도 이번 기회에 정리했다. 다 끄집어 낸 김에 정리해야지 원래 있는 상태에서 필요없는걸 꺼내어 처리하긴 어려운 일이다.
몇년전 베란다쪽 누수 피해를 한번 입었고 이번엔 가해자가 되었다. 일이 터지자 대화를 시작하고 관계를 유지해야할 대상이 순식간에 몇군데가 생겼다. 가장 피해가 컸던 아랫집 세입자 및 집주인, 그리고 조금 물 흔적이 비쳤던 그 아랫집이 가장 중요했다. 수시로 공사 진행상황과 보상 절차에 대해 안내를 했다. 공사 일정 및 협의사항을 관리사무소에 알렸고 탐지 및 공사에 필요한 배관 구조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언제 어떻게 누수탐지를 하고 복구할 것인지는 업체와, 그리고 진동과 소음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근처 입주자들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했다.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일,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아내와 공유를 했는데 공사 규모와 비용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해서도 안되었지만 불필요한 불안감을 키울 일도 아니었다. 이해당사자들에게 필요로 하는 정보는 그때 그때 예의바르고 책임지는 태도로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사태가 터진 후 만 4일째 우리 집의 누수 복구는 완료됐다. 아랫집은 도배업자와 협의하여 완전히 건조 된 후 날씨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진행하기로 했단다. 한층 더 아래층에서는 도배까지는 필요없다고 수차례 사양 의사를 밝히셔서 대신 과일 한 상자를 보내기로 했다. 일상배상책임보험은 접수 후 처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