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후배 은숙양의 코멘트를 보고나서 잠시 학창시절에 플랭카드를 썼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집회도 많고 시위도 많고…그래서 플랭카드도 많이 필요했던 그 시절.(1990년~)
저보다 바로 위에 플랭카드를 쓰던 선배는 86학번이었던 Y형. 그리고 4학번이나 건너뛰어서 제가 쓰게 되었지요. 누구를 위해서, 누가 부탁해서…라는 주체는 역시 정파에 따라 달라졌겠지요. N모계열에서는 같은 학번 여학생이었던것 같고…
제가 속해있던 조직;;;에서 쓰게되면 그건 그냥 일이었지만 다른곳(동아리나 학회등)에서 부탁하면 소정의 수고료를 받았습니다. 88담배 한갑과 병콜라 한병이었지요. ㅋㅋㅋ 아마 그건 Y형이 그렇게 했던걸 배웠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한복가게가서 천을 사옵니다. 가장 싼 천이었는데 1마에 300원정도였습니다. 보통 10마정도를 샀고, 그집 아주머니가 알아서 양쪽 끝에 각목을 끼울 수 있게 박음질까지 해서 주셨지요. 천을 사와서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잡습니다. 동아리연합회(줄여서 동연)를 먹;;었었기때문에 보통 동연 앞마당에서 썼는데요. 책상 두개를 들고 나와 각각에 플랭카드의 끝부분을 넓으느 테이프로 쭈욱..붙입니다. 그리고 팽팽해질때까지 거리를 띄워놓지요.
분필을 쥐고는 글씨가 써질 부분을 정하기위해서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쭈욱…위아래 선을 긋습니다.
쓰다남은 페인트통을 챙겨와서 쓸수 있는 것들을 골라낸 후에 적당히 신나를 섞습니다. 신나가 많으면 붓은 잘 나가지만 흘러내리게되고, 신나가 적으면 글씨는 진하지만 붓이 잘 나가질 않지요. 붓은 철물점에서 파는 뭐한 500원짜리 붓. 저번에 사용한 뒤에 신나로 깨끗하게 빨아놓지 않으면 묻은 페인트가 굳어버려서 다음에 쓰기 참 어렵습니다.
1.5리터 PET빈병을 집어와서 칼로 반토막 낸 다음에 그 아래쪽부분에 페인트와 신나를 섞습니다. 슥슥슥슥… 몇번 땅바닥에 붓질 해보고..됐다 싶으면… 글씨를 쓰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동연 앞마당은 온갖 종류의 페인트로;;; )
처음에는 그냥 검정이나 빨강 등으로 썼는데 몇기 전대협 출범식인지.. 비 억수같이 오던날 부산대에서 있던 집회에 갔더니 오오… 죄다 은색 페인트인겁니다. 나중에 페인트가게 가보니 “은분페인트”라던데… 색깔 진짜 예쁩니다. 진한색깔의 천에다가 쓰면 무진장 강렬하구요. 그때 이후로 아마 전국대학교에서 은색글씨가 유행했을겁니다. 하하.
나름대로 플랭카드 폰트개발이나 글자꾸미기에도 노력을;;; 열심히 했고;;;
에피소드를 좀 말하자면…
한두개는 그냥 동연 앞마당에서 쓰는데… 방학때 무슨 집회였는지.. 10여개를 하루만에 써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쓰는거야 별 문제가 아닌데, 10개를 써서 어디에서 말리느냐…는게 제일 큰 문제였지요. 마르기전에 접으면 엉망이 되잖아요. 그래서 짜낸 생각이 빈 강의실에서 책상을 전부 다 복도로 꺼내놓고… 강의실 앞부터 의자2개씩 놓고 플랭카드 하나 쓰고는 몇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또 빈 플랭카드 걸고 쓰고.. 또 뒤에 설치하고 쓰면서… 강의실 뒷쪽으로 쭈욱 빠져나왔습니다. 강의실에 페인트와 신나 냄새가 진동을 하고… 거의 환각상태;;; -_-;;
또 다른 에피소드는…
밤12시가 되면 학교의 가로등을 다 끕니다. 가로등아래서 쓸때는 좋았는데.. 팍 꺼지고 나면 막막하죠.
그러나.. 뭐 남는게 화염병이니;;; 화염병 서너개 꺼내다가 거꾸로 뒤집어서 심지 젖게 만든다음에 불 붙이면 바로 횃불병;;이 되지요. 플랭카드 주위 바닥에 세워놓고 한참 쓰고 있는데.. 동아리건물 2층에서 구경하던 사람중의 한명이 그러는겁니다.
“아저씨~ 바지에 불나요-_-“
으윽… 헐렁하게 입은 츄리닝에 막 화염병에서 불이 옮겨붙었더군요. 글씨쓰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바닥에 있던 화염병을 미처 살피지 못한 탓에… 애지중지하는 츄리닝에 그만 손바닥만한 구멍이 나버렸지요. 어찌나 아깝던지 원;;;
마지막 에피소드는…
열심히 플랭카드를 쓰고나서 손에 묻은 페인트를 닦아내기 위해서 한명은 신나를 살살 부어주고 저는 손을 싹싹 비비면서 페인트를 닦아내고 있었죠. 신나가 독해서인지 어째서인지 신나로 손 닦고나면 손 피부가 하얗게 손상됩니다. ㅠㅠ 어쨌거나…
그런데 손에서 흘러내린 신나가 몇미터 앞에 있는 휴지통까지 흘러내려갔고 휴지통 아래에는 잡다구리한 쓰레기 뭉치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악! 소리가 나면서 불길이 타고 올라와서 양손이 불길에 휩싸였죠. 신나에 흠뻑 젖었으니 오죽 신나게 옮겨붙었을까요.;;; 으악! 하면서 양손을 확확! 소리가 나게 휘저었더니 곧 꺼지더군요. 뜨거웠냐구요? 아뇨. 열심히 휘저었더니 신나가 증발하면서 빼앗은 체온과 비슷비슷했는지 그냥 미지근한 느낌이더군요. (손등의 털은 좀 탔겠지요;;) 흐..어찌나 놀랬던지 원;;
그리고 다 사용한 플랭카드는 회수되어서 보관되다가 다음번에 플랭카드를 내걸때 나무에 묶는 용도로 재활용된답니다;; 세로로 쭈욱………찢어서 양쪽끝에 꿴 각목에 묶어서 매달면 되지요~
한참 웃었어요..흐음..시위하는건 자주봤었지만 사실 참여한적은..’_’ㅋ 미대애들이 좀 그렇자나요..원래..ㅡ_ㅡ;무서워서 도망이나 가고..
에피소드읽고 웃기고 잼있었는데 헐헐 마지막껀 놀랬어요..
위험천만 정말다행~별일 없었으니..어흑 그래도 그순간엔 놀라셨겠어요..
바지불붙은건 좀 웃긴데..큭큭..
헤헤. 재미있었지요. 아마 전 다시 그시절로 돌아가서 플랭카드 쓸래? 그러면 네! 하고 가서 쓸거같아요. -,.-;; 이 글 쓰고나서 그 Y선배와 저 사이에 있던 선배형하고 잠깐 메신저 했는데 (그형이 Y형 뒤를 이을뻔했는데 제가 등장하는바람에;;) 그시절 얘기로 한참을 수다떨었습니다. 어찌나 재밌던지 원;;